압록강은 ‘로더’ 활용한 ‘트럭치기’ 밀수로 분주

  • 신동아
  • 입력 2020년 1월 19일 10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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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수 北노동자 “왜 핵 개발해 힘들게 하냐”
● 대북제재로 내수산업 ‘반짝’ 성장
● 관광산업 육성 시도… ‘중국’이 목줄 쥐어
● 제재 이어지면 민수 부문 ‘착취’ 불가피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중조우의교. [뉴시스]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중조우의교. [뉴시스]

“설비 보수와 관련해 잠시 영업을 중지합니다.”

지난해 12월 28일 중국 지린(吉林)성 옌지(延吉) 옌지국제호텔 1층 북한 식당 출입문에는 내부 수리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 식당은 12월 22일 영업을 중단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정한 북한 노동자 송환 시한이 12월 22일이다. 안보리가 2017년 채택한 제재 결의는 북한의 ‘달러벌이’를 막고자 유엔 회원국 내 모든 북측 노동자를 북한으로 돌려보내도록 했다.
지난해 12월 22일 영업을 중단한 중국 지린성 옌지국제호텔 1층 북한 식당 출입문에 내부 수리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지난해 12월 22일 영업을 중단한 중국 지린성 옌지국제호텔 1층 북한 식당 출입문에 내부 수리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 “그냥 놔두면 잘살 텐데”

“옌지뿐 아니라 단둥(丹東), 선양(瀋陽) 북한 식당들도 다 문을 닫았습니다. 내부 수리 중이라고 써놓았는데 쫓겨 간 거죠. 북한 친구들이 자존심이 셉니다. 영업 정지 당했다고 밝히지 못하죠. 연말 대목에 수리할 게 뭐가 있겠어요.”

연말연초 북·중 국경지역을 답사한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장은 이렇게 전했다. 12월 중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은 북한으로 철수하는 노동자로 북새통을 이뤘다. 전세기까지 동원해 노동자를 실어 날랐다. 3만 명 넘는 북한인이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건설업과 수산물가공업에 종사했으나 12월 22일까지 대부분 철수했다.

“왜 핵을 개발해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놔두면 잘살 텐데….”

러시아에서 철수하던 한 북한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정권에 불만을 토로하는 이가 많아졌다. 부산하나센터 센터장인 강동완 동아대 교수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북측 노동자는 “북한에 돌아가고 싶지 않으나 가족이 있기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강동완 교수는 김정은 정권의 기조와 인민의 인식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봤다.

“북한 정권이 인민들을 독려하고 다그치지만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변화된 인식을 뚜렷하게 느꼈습니다. 북한은 핵을 개발한 것과 그로 인해 제재를 받는 것은 미국 탓이라고 선전하면서 대(對)조선 압살정책에 맞서 우리도 강해져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근로자들은 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이 제재를 주도하는 것은 잘 알지만 그 원인을 핵 개발에서 찾습니다. 미국을 욕하는 게 아니라 핵을 만든 김정은 정권을 책망하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요.”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들. [flickr@Aleksei Zadonskii]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들. [flickr@Aleksei Zadonskii]

○ 대외 수출 90% 넘게 감소

“나라의 형편이 눈에 띄우게 좋아지지 못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9년 12월 28일부터 나흘간 진행된 노동당 제7기 5차 전원회의 보고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유엔 제재로 경제가 어렵다는 점을 공식 석상에서 밝힌 것이다. 김 위원장은 대북제재 장기화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자력갱생 의지를 드러냈다.

“경제건설에 유리한 대외적 환경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화려한 변신을 바라며 지금껏 목숨처럼 지켜온 존엄을 팔 수는 없다.”

김 위원장은 올해 집권 이후 처음으로 신년사를 생략했다. 대신 자력갱생을 통해 미국과 장기전을 벌이는 ‘새로운 길’의 좌표를 제시했다. 그렇다면 북한은 올해 뭐로 먹고살까.

북한의 경제 지표는 적신호로 가득하다. 2017년 11월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후 이듬해 4월 핵·경제 병진노선의 결속(結束)을 선언했으나 경제강국을 만들겠다는 김 위원장의 약속은 허언이 되고 있다. 북·미 핵 협상이 교착 상태인 데다 의견 차가 커 북한이 원하는 제재 완화가 단기간에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

2017년 상반기까지의 유엔 제재는 실효가 적었으나 2017년 8월,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같은 해 9월 6차 핵실험을 계기로 채택된 제8차, 9차, 10차 제재 결의부터 북한에 큰 타격을 줬다. 광산물, 섬유제품, 수산물 수출을 전면 금지했으며 북한 노동자의 고용도 막았다. 연간 유류 공급량도 제한했다. 그 결과 북한의 대외 수출은 90% 넘게 감소했으며 무역외 외화 수입도 급감했다.

인민이 허리띠 조이지 않게→허리띠 졸라매도 존엄 지켜야

통계청이 발표한 ‘2019 북한의 주요통계지표’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 경제성장률은 -4.1%로 전년도 -3.5%에 이어 2년 연속 하락세다. -4.1%는 1997년 -6.5%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43만 원으로 한국(3679만 원)의 26분의 1 수준이다. 이마저도 전년도 146만 원보다 3만 원 감소했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한국이 1893조4970억 원으로 북한(35조6710억 원)보다 53배 많다.

김 위원장은 12월 31일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부강, 자력번영해 나라의 존엄을 지키고 제국주의를 타승하겠다는 것이 우리의 억센 혁명의 신념”이라고 다그쳤다.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 연설에서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말한 것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김 위원장은 ‘침체’ ‘타성에 젖은’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서 경제 관료들을 비판했다.

김형덕 소장은 유엔 제재의 직격탄을 맞은 국가 부문 경제의 손실을 채우려면 민수 부문 경제를 착취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렇게 내다봤다.

“북한은 그간 국가 예산을 자원 수출을 통해 마련했습니다. 민수 경제가 개선된 것은 시장에 맡겨버렸기 때문입니다. 유엔 제재로 국가 부문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국가가 쓸 돈을 민수에서 충당할 것입니다. 그러면 민수 경제에 타격이 갈 수밖에 없어요. 제2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는 겁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양강도 삼지연 지역의 정비 사업을 가속화하고자 모든 외화벌이 단체나 기업에 대해 연간 외화 수입의 1%를 내도록 지시했다고 도쿄신문이 12월 30일 보도했다. 이 같은 형태의 착취가 늘어나리라는 게 김형덕 소장의 분석이다.

강동완 교수는 해외에서 일한 북한 노동자들의 정권에 대한 인식 변화와 이들이 귀국해 주변 사람에게 끼칠 영향이 체제의 생존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재의 역설 : 내수산업 ‘반짝’ 성장

북한 경제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박종철 경상대 교수는 제한적이지만 민간 부문에서 경제가 활력을 띠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 지표에는 적신호가 켜졌으나 북한 사람들을 만나보면 ‘악화되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농업 개혁, 기업 개혁에서 얼마간 성과를 낸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과의 무역, 관광객 유치에 영향을 끼칠 신압록강대교가 완공을 목전에 뒀습니다.”

박종철 교수는 수출이 금지된 석탄을 전력 생산으로 돌려 전기 공급이 늘어났으며 화학, 철강 산업 성장 등의 영향으로 제한적이지만 경제가 활기를 띤다고 설명했다. 이는 제재의 역설이라고도 볼 수 있다. 김정은이 강조하는 ‘자력갱생’이 일부 영역에서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도 해석해 볼 수 있다.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경제리뷰’에 게재한 ‘대북제재 중장기 효과: 석탄·철광석 수출제재가 북한 내수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수출제재로 인해 내수공급이 증가함으로써 발전이나 제철 등 연관 산업에 주는 긍정적 효과는 ‘미미하다’고 봤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소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북한의 경제 수준이 워낙 낮기에 내부 개혁을 통해 일정 부분 경제성장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나 자력갱생으로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북한이 신제품을 개발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원부자재를 어디서 구합니까. 원자재를 수입해야 건설 공사도 하는 겁니다. 북한은 독자적으로 뭘 할 수 있는 경제 수준이 아닙니다.”

임수호 책임연구위원에 따르면 북한의 수출을 견인한 석탄·철광석에 대한 제재는 관련 산업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고 그로 인해 내수용 광업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제재로 인해 내수 공급이 증가해 발전이나 제철 산업에 일부 긍정적 영향을 주지만 수출용으로 생산했다가 쌓아둔 물량을 소진할 경우 ‘반짝’ 경제성장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관광산업을 통해 제재 국면을 버텨내려 하고 있다. [뉴시스]
북한은 관광산업을 통해 제재 국면을 버텨내려 하고 있다. [뉴시스]

관광산업으로 ‘숨통’ 마련하려 해

전방위 제재가 가해지는 상황에서 북한의 외화벌이 수단은 사실상 ‘관광산업’과 ‘밀무역’이 유이(唯二)하다. 김정은이 원산·갈마지구, 금강산, 삼지연 등의 관광단지 개발을 서두르는 이유다. 박종철 교수의 설명이다.

“중국과 유럽, 러시아 관광객이 북한에서 소비하는 돈이 북한 정권에 중요한 상황입니다. 관광산업 증진을 위해 평양 근처 양덕지역도 정비하고 있습니다. 4차선 도로인 신압록강대교가 개통되면 물류와 인적 교류 증가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신압록강대교와 관련해 북한 주민들이 ‘연초 상당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북한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2015년 12만 명에서 2018년 20만 명으로 증가했다. 조봉현 소장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북한이 지정한 경제특구에 그 어떤 나라도 들어오지 않았어요. 경제특구 운용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당장 돈이 되는 관광산업을 육성하는 것입니다. 올해 내부적으로는 자력갱생을 외치면서 대외적으로 관광산업을 육성해 제재 국면을 돌파하려고 시도할 것으로 보입니다. 2019년 북한을 찾은 관광객 수가 30만 명 내외인데 100만 명 넘는 수준으로 늘리려고 할 겁니다.”

북한 관광산업 성패는 김정은과 시진핑(習近平)의 ‘브로맨스’에 달려 있다는 시각도 있다. 김한규 한국관광공사 차장은 KDI ‘중국인 북한관광의 흐름과 변화’ 연구논문에서 중국의 필요가 어떻게, 얼마나 이어지는지, 북한이 자신의 전략적 가치를 어떻게, 얼마나 높이는지에 따라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은 관광이 다른 나라를 들어다 놨다 하는 데 꽤 쓸모 있다는 것을 다양한 경험을 통해 체득했습니다. 북한뿐 아니라 한국, 일본, 필리핀, 대만을 상대로 ‘검증’했습니다. 상황 여하에 따라 조이고 푸는 과정을 반복할 가능성이 큽니다. 북·중 관계에서 관광은 독자 영역의 산업이 아니라 정치·군사·경제·국제 변수의 하위일 수밖에 없습니다.”

김형덕 소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겨울이어서 중국인 관광객이 적은데 여름에는 평양에 방이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지 않아 재방문율은 낮다고 얘기하더군요. 예전에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촬영하지 못하게 했는데 지금은 허용했어요. 사진을 못 찍게 하면 관광객이 안 온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거죠. 김일성, 김정일 동상만 찍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관광산업은 유엔의 제재 대상이 아니에요. 북한 관료들에 따르면 관광객 1억 명 유치를 목표로 잡았다고 합니다. 원래 북한이 계획은 크게 잡거든요.”
2018년 8월 4일 화물 트럭이 신의주에서 단둥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2018년 8월 4일 화물 트럭이 신의주에서 단둥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압록강 바닥에 ‘로더’ 세워놓고 ‘트럭치기’

중국은 유엔 안보리가 정한 북한 노동자 송환 시한(지난해 12월 22일) 이후에도 취업이 아닌 연수 혹은 관광 비자를 내주는 방식으로 북한 노동자를 계속 고용하고 있다.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철수시킬 수 있다. 북한은 유학이나 연수 비자를 통해 노동자를 다시 파견하는 것을 러시아에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형덕 소장은 “중국이 임시방편으로 기술연수 방식을 활용하는데 장기적으로 계속되기는 어렵다. 미국이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면 중앙정부가 지방정부까지 다 챙길 수 없다고 변명하겠으나 중국의 처지가 난감해질 수 있다. 트럼프가 지금은 묵인하고 있으나 북한이 도발하면 중국에 완전 철수를 요구할 수 있다”고 봤다.

북·중 국경에서의 밀무역은 현재진행형이다. 중국의 대북 소식통이 지난해 말 중국 창바이(長白)에서 목격한 장면은 충격적이다. 압록강 바닥에 로더(토사·골재·파쇄암 등을 운반기계에 싣는 데 사용되는 기계)를 놓고 ‘트럭치기’로 밀수가 이뤄진다. 압록강 상류는 강폭이 좁고 수심이 낮다. 북한 쪽 압록강변에 트럭 30대를 세워놓고 로더를 이용해 중국 쪽으로 화물을 옮겼다. “세관을 옮겨놓았다고 보면 된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유엔이 금지한 광산물, 섬유제품, 수산물이 밀수출되는 것이다.

김형덕 소장은 “국가가 공식적으로 밀수출하는 것으로 중국이 현재는 눈감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조규희 객원기자 playingjo@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20년 2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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