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견 허가제[횡설수설/이진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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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영국 BBC는 경찰관 손을 문 차우차우 강아지 ‘벙글’이 애견인들의 석방운동으로 풀려났지만, 형평성 숙제를 남겼다고 보도했다. 4개월 된 벙글은 집에서 탈출 도중 경찰관 손을 물어 법(The Dangerous Dog Act)에 따라 체포됐고, 9개월간 격리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체포된 벙글의 귀엽고 애처로운 모습을 본 애견인들이 석방운동을 펼쳤고 경찰은 벙글이 전문가 평가를 받는 것을 전제로 석방했다. 경찰은 “반려동물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은 모든 주인들의 책임이며, 대중을 위험에 처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선진국에서는 반려견, 특히 맹견의 인명사고는 강하게 처벌한다. 영국은 맹견을 기르려면 특별자격증 취득과 법원 허가를 받아야 하고, 개 물림 사고는 최대 14년까지 징역에 처한다. 독일은 19종의 맹견을 1, 2급으로 나눠 관리하는데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등 4종은 아예 소유하지 못한다.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서는 체중 20kg 또는 체고 40cm 이상의 개는 견주를 평가한 뒤 사육 허가를 내준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22년부터 맹견을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키울 때 허가를 받도록 관련 제도를 고치겠다고 밝혔다. 사람을 문 개는 공격성을 평가해 행동 교정이나 심하면 안락사를 시키는 방안도 마련한다. 내년부터는 맹견 소유자의 보험 가입도 의무화된다. 2018년 개에게 물려 응급실을 찾은 사람은 2700여 명에 달했다. 우리는 도사견,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 스태퍼드셔 불테리어, 로트바일러 등 5종과 그 잡종을 맹견으로 규정하고 있다.

▷개 물림으로 인한 피해는 막아야겠지만, 개를 허가받고 길러야 하느냐는 반론도 나온다. 입마개 및 목줄 미착용 등 관리 소홀은 제재할 수 있지만, 소유 여부까지 관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이미 잘 훈련시켜서 가족처럼 키우는 개가 기준에 미달하면 버리거나 이사를 가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허가권을 가진 지자체마다 기준이 다를 경우 형평성 문제도 나올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반려견과 산책할 때 사람이 다가오면 리드 줄을 목 가까이 끌어당겨 개를 앉도록 해 행인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습관화돼 있다. 반려견이 흥분한 듯 보이면 길가에 붙어서 머리를 행인 반대방향으로 돌려준다. 전문가들은 견주들이 하는 말 중 가장 잘못된 게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고 한다. 소형 강아지를 보고 임신부가 놀라 넘어져 유산한 경우도 있다.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는 반려견을 안고 이동하는 ‘펫티켓’이 습관화된다면 허가제까지는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반려견#맹견 인명사고#맹견 허가제#펫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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