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관측기 든 천문학자, 근대과학의 문을 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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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Ⅰ/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김찬현 박철은 옮김/468쪽·2만3000원·동아시아

밤하늘을 무수히 채운 별들. 15세기 후반 새로운 수학적 천문학을 꿈꾸던 중부 유럽의 학자들은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예측하던 고대의 우주관에 대해 서서히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밤하늘을 무수히 채운 별들. 15세기 후반 새로운 수학적 천문학을 꿈꾸던 중부 유럽의 학자들은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예측하던 고대의 우주관에 대해 서서히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서두에서 “모든 인간은 본성상 알기를 원한다”고 했다. 앎에 대한 욕구가 본성이라면 이 책을 쓴 야마모토 요시타카(山本義隆)는 딱 들어맞는 사람이다.

왜 유럽에서 근대과학이 탄생했는지를 10년 넘게 파헤친 그는 2005년(국내 출간 기준) ‘과학의 탄생: 자력과 중력의 발견, 그 위대한 힘의 역사’를 펴냈다. 물체를 밀어내고 끌어당기는 보이지 않는 힘의 발견이 과학을 만들어냈음을 풀어냈다.

2010년에는 16세기가 유럽의 르네상스와 17세기 과학혁명이라는 두 창조적인 시대의 골짜기는 아니었다는 ‘16세기 문화혁명’을 내놨다. 직인 상인 뱃사람 군인 등이 폐쇄적이던 현장 지식을 라틴어가 아닌 지역의 말(속어)로 기록하고 인쇄 출판해 지식세계의 지각변동을 일으켜 과학혁명을 예비했다는 도발적인 해석이었다.

마지막 3부인 이번 책은 16세기 유럽인의 세계관이 바뀌는 계기를 제공한 천문학과 지리학의 혁명적 전환을 담았다. 지구 중심의 세계상(천동설)에서 태양 중심의 세계상(지동설)으로 바뀌는 것만이 아니다. 고대 ‘달 아래 세계’였던 지구를 ‘달 위의 세계’인 행성 대열에 포함시키면서 두 세계가 서로 다른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오래된 전제를 허물어뜨리는 과정이다.

별의 위치, 시각, 경도와 위도 등을 관측하는 기기인 아스트롤라베. 1462년 요하네스 레기오 몬타누스가 만들었다. 동아시아 제공
별의 위치, 시각, 경도와 위도 등을 관측하는 기기인 아스트롤라베. 1462년 요하네스 레기오 몬타누스가 만들었다. 동아시아 제공
3부의 첫째 권인 이 책에서는 15세기 후반 독일의 천문학자 게오르크 포이어바흐(1423∼1461)와 그의 제자 요하네스 레기오몬타누스(1436∼1476)의 저작과 행적을 추적한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을 받아들여 개혁하고 극복하는 길을 닦았다. 중세 후반 아라비아 학자들이 재발견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수학적 천문학은 천동설이 바탕이지만 관측과 계산을 기반으로 천체의 운동을 예측했다. 관찰이나 측정과는 상관없이 말과 논증의 엄밀함으로 옳고 그름이 판단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우주론과 달랐다.

저자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실용과 현장을 소환해 논지를 꿰뚫는다.

포이어바흐 등은 수학에 정통하면서 스스로 관측 장치를 제작, 개량, 실행한 기능자였다. 포이어바흐는 “저희는 오로지 실천을 통해 한층 더 현명해진다”고 했다. 당시 대학의 학자들도 수학을 이용해 천체운동을 예측했지만 ‘노동의 장을 서재에서 작업장으로 옮기는 일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역산(曆算)과 점성술 같은 일상생활 전반의 실용적 쓰임새를 위해 예측과 관측 결과가 일치하는지 질문하며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술과 이론이 올바른지 검증했다. 당시 인문주의자들처럼 고대인의 지식에 함몰되지 않고 ‘거인의 어깨’ 위에서 그것을 뛰어넘을 길을 모색했다. 천문 관측의 양은 방대해졌고 질은 정밀해졌다. 레기오몬타누스 사후 그를 돕던 베른하르트 발터는 1475년부터 죽기 직전까지 약 30년간 천체 관측을 빼놓지 않았다.

이 ‘새로운 천문학자들’이 중부 유럽의 자유교역 지역으로 상인과 기계기술자, 인쇄업자가 밀집한 뉘른베르크를 주무대로 활동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들은 고대 문헌을 정확하게 복원하는 인문주의 방법, 수학을 중시하는 상인의 에토스, 장치를 이용해 관측하는 직인의 기량을 통합해 천문학의 새로운 양식을 제시했다. 그렇게 코페르니쿠스 브라헤 갈릴레오 케플러로 이어지는 길을 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을 수학적으로 소개한 초반 약 50쪽은 일반 독자가 소화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 수식(數式)의 계곡을 지나면 Ⅱ, Ⅲ권이 기다려질 것이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책의 향기#도서#신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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