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만 대선, 젊은 유권자 ‘톈란두(天然獨)’ 표심에 달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0일 17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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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앵그리영맨’에 공감하고 중국에 반감 큰 대만 20~30대 표심 잡기 총력전
올해 선거권 얻은 트와이스 쯔위 타이베이 등장에 대만 언론 주목

10일 타이베이 민진당 당사 1층의 차이잉원 총통 선거 캠프에 몰린 지지자들
10일 타이베이 국민당 당사 외벽에 걸린 한궈위 시장 지지 호소 현수막
10일 타이베이 민진당 당사 1층의 차이잉원 총통 선거 캠프에 몰린 지지자들 10일 타이베이 국민당 당사 외벽에 걸린 한궈위 시장 지지 호소 현수막
대만 대선(11일)을 하루 앞두고 후보들이 유권자의 3분의 1에 달하는 20~30대 젊은층 표심 잡기에 총력전을 펼치면서 대만 전역의 선거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대만의 젊은층은 홍콩의 반중 시위 주축인 ‘앵그리 영맨’들에 공감하고 중국 체제와 대만 정책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어릴 때부터 대만이 주권 독립 국가라고 생각하며 자랐다는 의미에서 ‘톈란두(天然獨)’라고 불린다.

정치분석가인 라이이중 위안징기금회 라이이중 집행이사장은 10일 본보 인터뷰에서 “대만 젊은층 상당수가 이번 대선을 민주주의가 지속될 수 있는지 결정하는 국민투표로 여긴다”고 지적했다. 왕신셴 타이베이 국립정치대 동아시아연구소 소장은 “젊은층은 집권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을 지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아 60~70%에 달한다”고 말했다.

대만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20~23세 유권자 가운데 118만6685명이 올해 처음 투표하고 이는 전체 유권자(1931만1105명)의 6.1%다. 또 20~30대 유권자는 666만9076명으로 전체 유권자의 34.5%에 달한다.

● 차이잉원 “이번 선거는 젊은이들을 위한 전쟁”

민진당 차이 총통 진영은 젊은층 투표율이 높을수록 유리하다고 보고 홍콩을 대만의 미래로 등치시켜 젊은이들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선거 전략을 공세적으로 펼쳤다.

차이 총통은 9일 밤 타이베이 유세에서 “홍콩 젊은이들이 경찰에 맞아 머리가 터지고 피를 흘리는 걸 모두 봤다”며 “이번 선거는 대만 젊은이들을 위한 전쟁”이라고 외쳤다. 이어 “대만의 차세대인 젊은이들이 (홍콩처럼) 거리로 나서 생존을 위해 투쟁할 필요가 없도록 차이잉원에게 4년의 임기를 더 달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에게 일상인 자유가 작은 실수로도 사라질 수 있다”며 “홍콩은 이미 일국양제(1국가 2체제)의 실패를 증명했다. 이 문제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정당은 모두 대만의 미래를 걸고 도박하는 것”이라고 친중 성향의 국민당 후보 한궈위 가오슝시 시장을 몰아붙였다. 차이 총통은 10일에는 한 시장의 정치적 기반인 대만 남부 가오슝시부터 자신의 집무실인 총통부가 있는 북부 타이베이까지 종단 유세를 펼치는 강행군으로 지지를 호소했다.

차이 총통의 이런 전략이 ‘대만 주권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를 가리키는 망국감(亡國感)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젊은이들의 공감을 일으키고 있음을 현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차이 총통의 10일 유세에는 젊은층이 대거 몰렸다.

타이베이 유세 현장에서 만난 예(葉·24·여)모 씨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유투브를 보는 게 위법인 사회를 원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홍콩이 박해받는 걸 봤다. 우리는 자유 사회에 산다. 대만은 절대 홍콩의 길을 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차이 총통은 중국이 ‘NO’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 젊은층이 많이 지지한다”며 “동성혼인법 등 진보적 정책도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10일 타이베이 민진당 당사 1층의 차이잉원 총통 선거 캠프에 몰린 지지자들
10일 타이베이 국민당 당사 외벽에 걸린 한궈위 시장 지지 호소 현수막
10일 타이베이 민진당 당사 1층의 차이잉원 총통 선거 캠프에 몰린 지지자들 10일 타이베이 국민당 당사 외벽에 걸린 한궈위 시장 지지 호소 현수막
● 한궈위 “민진당 집권하면 젊은이 퇴로 사라져”

젊은층 지지도에서 수세인 한 시장 진영은 젊은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경제 민생이라는 점을 파고들었다. 한 시장은 9일 밤 타이베이 유세에서 “민진당이 다시 집권하게 하면 중화민국, 자유와 민주주의는 물론 젊은이들도 퇴로가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중국과 대만이 국민당 소속 마잉주 충통 시절인 2010년 체결한 사실상 자유무역협정(FTA)인 “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이 올해 만료되면 대만은 국제적인 고아가 될 것”이라며 “청년들은 저임금에 갇혔고 국제사회와 만날 기회가 없어지고 있다. 인재도 사라져 대만을 떠나면 대만의 미래가 어떨게 될지 모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시장 유세 현장에는 젊은층 지지자들도 눈에 띄었지만 기자의 인터뷰 요청은 대부분 피했다.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응하며 주장을 펼친 차이 총통 유세 현장의 젊은 지지자들과 대비됐다.

26세인 홍위첸 국민당 부대변인을 10일 타이베이 국민당사에서 만나 이유를 물었다. 그는 “많은 젊은층이 민진당과 차이 총통을 지지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젊은이들이 한 시장을 지지하면 공격당하고 욕 먹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다. 이를 걱정해 한 시장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꽤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타이베이에서 만난 쑨(孫·44)모 씨는 “한 시장을 지지한다”면서도 “(함께 치러지는) 입법위원회(국회) 선거에 나온 국민당 후보들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 모두 나이가 너무 많다. 젊은 정치인들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례대표 의원의 비율을 결정하는 “정당투표는 제3당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 4년 전 대만 대선 흔들었던 쯔위, 이번 대선서도 눈길


차이 총통이 처음 당선된 2016년 대만 대선을 흔들었던 한국 걸그룹 트와이스 멤버 쯔위(21)가 이번 대선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올해 처음 투표권을 얻은 그가 7일 타이베이에 돌아오자 대만 언론들은 “쯔위가 투표할지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대만 언론의 표현에 따르면 쯔위는 ‘첫 투표족’이다. 대만은 20세부터 선거권을 얻는다.

대만인인 쯔위는 2015년 11월 대만기를 흔드는 모습이 인터넷에 공개된 뒤 중국 네티즌들의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중국은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고수해 대만이 국가임을 나타내는 대만기의 존재 자체를 거부한다.

하지만 쯔위가 당시 수척한 모습으로 “중국은 하나다. 내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밝히는 사과 동영상을 올리자 대만 젊은이들이 분노했다. 당시 대만 언론들은 쯔위 사건이 차이 총통의 득표율을 1~2% 상승시켰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때문에 이번에도 쯔위의 행보가 눈길을 끈 것. 하지만 쯔위 어머니는 대만 언론과 인터뷰에서 “쯔위는 이번에 투표하지 않는다. 가족들과 여행을 갈 것”이라고 밝혔다.

타이베이=윤완준 특파원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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