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 테러단체, 대사관 공격 이유는… 美 외교공관 수난의 역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0일 16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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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미국 케이블채널 쇼타임의 드라마 ‘홈랜드 시즌4’는 파키스탄의 유명 테러범이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미 대사관을 공격하고 파괴하는 과정을 그렸다. 테러범은 극중 미 대사의 남편을 포섭하고 파키스탄 정보국(ISI)의 도움까지 얻어 군사 요새나 다름없는 대사관에 침입한 후 수십 명을 살해한다. 허구라 해도 미 대사관을 공격하려는 테러단체의 시도가 얼마나 집요하고 치밀하게 이뤄지는지 보여준다.

최근 극한 대결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이란 갈등의 뒤에도 미 대사관이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이라크의 친(親)이란 시위대가 바그다드 미 대사관을 공격했다. 미국은 자체 발전소, 상하수도, 무기고 등을 갖춰 사실상의 신도시나 다름없는 바그다드 대사관이 공격받았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2008년 대사관 건립 이후 공격을 받은 것도 처음이었다. 3일 후 미군은 드론 공습으로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바그다드공항에서 공개 사살했다.

1979년 11월 이란 혁명세력은 같은 해 2월 이슬람 혁명 후 미국으로 도피한 팔레비왕의 송환을 요구하며 444일간 테헤란 미 대사관을 점거하고 52명의 미국인을 인질로 잡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줄곧 숫자 ‘52’를 강조하며 이란에 적대감을 표시하는 이유다.

● 빈라덴도 대사관 테러로 이름 알려


세계 각국의 미 외교공관은 수십 년간 크고 작은 공격에 시달려왔다. 특히 반미 감정이 심하고 각종 테러단체가 난립하는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이런 일이 잦다. 2001년 9·11 테러의 주범인 수니파 무장단체 알카에다의 최고지도자 오사마 빈라덴(1957~2011)의 악명도 미 대사관 테러에서 시작됐다. 알카에다는 1998년 8월 7일 동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와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의 미 대사관에서 4분 간격으로 차량 폭탄 테러를 저질렀다.

같은 날 두 나라의 두 대사관에서 동시에 테러를 자행했다는 점도 놀랍지만 희생자 수도 엄청났다. 나이로비에서 213명, 다르에르살람에서 13명 등 총 226명이 숨졌다. 나이로비에서는 견고하게 지어진 대사관 건물의 일부만 무너졌음에도 폭발로 인근 빌딩이 완전히 붕괴해 사망자 수가 많았다. 두 테러로 인한 부상자만 4000여 명에 달했다. 이 소식을 접한 미 전역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할리우드의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2014년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에도 이 모습이 잘 나와 있다. 주인공은 TV로 나이로비 테러를 접하고 그 참상에 놀란다. 테러범과 맞서겠다며 군대에 자원해 이라크전에서 저격수로 활약한다.

당시 미국은 두 테러의 배후 조종자로 빈라덴을 지목하고 그의 목에 40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테러 전만 해도 빈라덴은 이름이 많이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재벌가 후손인 그는 주요 테러단체에 뒷돈을 대주는 인물 정도로만 여겨졌다. 그를 대형 테러를 진두지휘할 사람이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빈라덴은 테러 6개월 전인 1998년 2월 “세계 전역의 미국인을 죽이는 것이 무슬림의 의무”라는 과격한 주장을 내놨다. 이후 두 대사관 테러를 자행하며 전 세계에 이름을 널리 알렸다. 성일광 건국대 중동연구소 연구원은 ‘9·11 테러’가 아니었다면 빈라덴은 케냐와 탄자니아 테러의 기획자로 기억됐을 것“이라며 ”두 사건으로 인해 그가 반미의 상징으로 부상했다. 결국 9·11이라는 미 최악의 테러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 미 대사 2명 순직

미 외교관과 민간인 직원의 희생도 잇따랐다. 미국의 대사가 목숨을 잃은 사건은 2건이다. 두 사람은 모두 미 국무부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 외교관이었다.

2012년 9월 리비아 동부의 2대 도시 벵가지의 미 영사관이 무장 시위대 수십 명의 공격을 받았다. 이들은 미국에서 제작된 한 영화가 이슬람을 모독했다며 영사관 건물에 불을 지르고 수류탄을 발사했다. 이로 인해 영사관 내 주요 시설이 연기로 뒤덮였고 시위대 일부는 대사관 내부로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크리스토퍼 스티븐슨(1960~2012) 주리비아 미국 대사와 미국인 직원 3명이 숨졌다. 스티븐슨 대사는 원래 수도 트리폴리의 미 대사관에서 근무했지만 공교롭게도 그가 벵가지에 왔을 때 침입이 일어났다. 구출 당시 그는 연기로 인한 질식에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곧 숨졌다.

앞서 1979년 2월 아돌프 덥스(1920~1979) 주아프가니스탄 미국 대사는 대사관 코앞에서 일어난 납치로 사망했다. 그는 출근길에 수도 카불의 미 대사관 앞에서 이슬람 무장세력과 맞닥뜨렸다. 4명의 괴한이 그의 차량에 접근한 후 운전기사를 총으로 위협했다. 납치범들은 덥스 대사를 한 호텔로 끌고 갔고 아프간 정부에 ”정치범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덥스 대사는 구출 과정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됐다.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이 대거 숨진 사건도 있다. 1983년 4월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수도 베이루트의 미 대사관에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했다. 미국인 17명이 숨졌고 이중 8명이 CIA 요원이었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 사건을 ‘하루에 가장 많은 CIA 요원이 숨진 날’로 규정했다. 헤즈볼라는 같은 해 9월에도 베이루트 대사관 인근에서 테러를 저질렀다.

● 상징성과 접근성으로 공격 빈번

중동 전문가들은 미 외교공관에 대한 공격이 잦은 이유로 △상징성 △군사 시설에 비해 비교적 쉬운 접근 △미국과 주재국의 갈등 유발 △미 본토 공격의 대체 효과 등을 꼽는다. 미 대사관은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대표한다. 또 주로 각국 대도시의 도심 핵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삼엄한 경비를 펼쳐도 인근을 오가는 인파가 상당해 민간인 피해가 적지 않다. 테러 세력의 시각에서는 미국에 적대심을 표출하면서 피해는 극대화할 수 있는 장소인 셈이다.

공격이 발생했을 때 경비 소홀 등을 이유로 미국과 주재국의 갈등이 커져 정작 테러범에 대한 대응이 늦어진다는 점도 반미 무장단체들이 대사관 테러를 선호하는 이유로 꼽힌다. 이라크 친이란 시위대의 바그다드 미 대사관 공격은 미국과 이란 갈등 못지않게 미국과 이라크의 갈등을 증폭시켰다. 미국은 대사관의 이라크인 경비세력이 친이란 시위대에 동조해 이들의 대사관 진입을 제대로 저지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한다. 이라크도 미국이 자국 땅에서 이란 군 최고위급 인사인 솔레이마니를 공개 암살한 것은 주권 침해라고 분노한다.

바그다드 대사관 공격 닷새 뒤인 이달 5일 이라크 의회는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를 결의했다. 격분한 트럼프 행정부는 ‘이라크 제재’ 카드를 언급하며 맞불을 놓았다. 2006년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사망 후 이라크는 수니파와 시아파로 완전히 양분됐다. 2014년부터 이슬람국가(IS)가 기승을 부렸고 지난해 10월부터는 경제난 등으로 반정부 시위가 끊이지 않아 중앙정부 기능이 극도로 허약하다. 미국이 아니면 현실적으로 치안을 유지할 방법이 없다. 미국 역시 중동 최대 반미 국가 이란과 대결하려면 이란과 국경을 맞댄 이라크의 지정학적 가치를 과소평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데도 양측이 이렇게 대립하는 것 자체가 대사관 공격의 후폭풍이 상당함을 보여준다.

미 본토에 대한 직접 공격이 사실상 어렵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중동 외교 소식통은 ”미국에 큰 피해를 입히려면 9·11 테러와 같은 본토 공격을 감행해야 하지만 중동에서 미국이 지리적으로 워낙 멀고 9·11 이후 검문이 강화돼 입국이 까다롭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치외법권 지역인 외교공관에 대한 공격은 미 본토의 직접 공격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전문가들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미 외교공관에 대한 테러가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는 이유다.

● 공격 받을 때마다 구조 바꿔


미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미 정보기술(IT) 전문지 와이어드는 미 정부가 미 외교공관의 구조와 경비 방식을 바꾸는 식으로 잦은 공격에 대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1998년 나이로비 대사관 테러 이후 대사관의 첫 번째 출입구와 본체 건물 사이에 상당한 간격을 두는 방식으로 건물을 짓고 있다. 테러 전 출입구와 본체 건물이 상당히 가까웠고 이로 인해 사망자가 컸다는 지적을 반영했다. 대사관 건물의 방탄 창문, 출입구의 차량 바리케이드 역시 필수 요소가 됐다.

국무부 외교경호실(DSS)은 세계 약 300곳 미 대사관에 약 4만5000명의 특수 요원을 파견하고 있다. 이들은 대사관 건물에 대한 물리적 보호, 직원들의 안전가옥 대피, 위험 대응 지침 및 화학무기 공격 대비책 등을 담당한다.

하지만 미국의 경계 태세가 강화될수록 현지에서의 마찰 또한 불가피하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미 대사관들은 대부분 높은 외벽을 쌓고 상당수 미군을 대사관 경비에 투입한다. 주재국 경호 요원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바그다드 대사관 공격 때도 이라크인 보안 요원들은 소극적으로 대처했고 미군들이 최루탄과 섬광탄을 대거 발사하며 친이란 시위대를 강경 진압했다. 이처럼 대사관 보안 업무를 미군이 담당하는 것이 현지에선 ‘점령군 행세’로 받아들여져 반미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이라크에서 바그다드 미 대사관은 외세의 상징처럼 여겨진다“고 진단했다.

● 피해 없는 중국과 러시아 공관

미국과 달리 중국과 러시아 같은 강대국 외교공관은 아직까지 중동에서 별다른 공격을 받은 적이 없다. 두 나라가 반미 성향인데다 중동에서의 군사력은 미국에 못 미쳐 대중들의 반발 심리가 적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두 나라가 중동에서 영향력을 계속 확대한다면 모를까 아직은 미국과 비교하기 힘들다. 대중들의 반중, 반러 감정도 크지 않다“고 진단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중동에 군사 기지가 없다. 특히 지금까지 중국의 중동 정책은 철저히 경제 협력 위주였다. 러시아는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후 바샤르 알 아사드 현 대통령을 지원하며 공군 등을 파견했지만 이를 시리아에만 국한했다.

반면 중동 주둔 미군의 숫자는 갈수록 불어나고 있다. 뉴스위크와 MSNBC 등에 따르면 현재 아프가니스탄(1만4000명), 카타르(1만3000명), 쿠웨이트(1만3000명), 바레인(7000명), 이라크(5200명), 아랍에미리트(5000명), 사우디아라비아(3000명), 요르단(2800명), 시리아(2000명) 등 중동에만 약 5만5000명의 미군이 있다. 이번 이란과의 갈등으로 추가 파병되는 약 9000명의 군인을 감안하면 6만 명을 훌쩍 넘는다. 특히 미국은 이라크가 IS 격퇴 작전의 중심지이자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이유로 한 나라에서만 12곳의 군사 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중동 주둔 미군이 불어날수록 군사 시설보다 상대적으로 공격이 용이한 외교공관의 피해가 뒤따를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다만 중국과 러시아도 중동에서의 군사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두 나라는 이란과 함께 인도양 북부와 오만만 공해에서 사상 최초로 합동 해군훈련을 실시했다. 사실상 미국을 겨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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