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력 사용 원치 않아” 한 발 물러선 트럼프…이란 위기 진정되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9일 0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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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백악관
출처=백악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일(현지 시간) 이라크 내 미군기지에 대한 이란의 미사일 공격과 관련해 강력한 추가 경제제재를 즉각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군사력 사용은 원하지 않는다”며 군사적 대응이나 확전은 자제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란이 미국인이나 미국 시설을 공격할 경우 몇 배로 응징하겠다고 공언해왔던 그가 한 발 물러서면서 일촉즉발 상황으로 치닫던 양국 간의 충돌이 누그러질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발표한 대국민 성명에서 “지난 밤 이란의 공격으로 인한 미국인 사상자는 없었고 기지 내의 피해도 크지 않다”며 이런 향후 대응 방향을 밝혔다. 미사일 공격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이란은 물러서는 것처럼 보인다(standing down)”며 “이는 모든 관련 당사국은 물론 전 세계에 좋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이란 공격에 대응할 방안들을 검토하면서 이란 정권에 즉시 징벌적인 추가 경제제재를 부과할 것”이라며 “이 강력한 제재들은 이란이 태도를 바꿀 때까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모두는 이란과의 기존 핵 협정(JCPOA)의 잔재에서 벗어나 세상을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으로 만들기 위한 협정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며 새로운 핵 협상 의사도 내비쳤다. “이란이 아직 건드려지지 않은 엄청난 잠재력을 개발해 번영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협정을 만들어야 한다. 이란은 위대한 국가가 될 수 있다”며 이란을 달래는 듯한 발언도 덧붙였다.

군사력 사용에 대해서는 “내가 취임한 이후 2조5000억 달러를 들여 완전히 새로 정비한 미군은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하다”면서도 “우리가 위대한 군대와 군사 장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꼭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우리는 이를 사용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이란을 향해 당장 군사적 보복을 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군사적, 경제적으로 모두 강한 미국의 힘이 가장 좋은 억지력”이라고도 했다.

9분 남짓 이어진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대국민 성명은 당초 이란의 미사일 공격이 발생한 직후인 전날 밤 곧바로 발표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백악관은 7일 밤 일부 언론의 관련 보도를 부인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외교안보 참모진과의 회의를 마친 후 트위터를 통해 “내일 아침 성명을 발표할 것”이라며 하루를 늦췄다. 미국인은 물론 파트너국가인 이라크인 사상자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대응 수위와 시점을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백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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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테러 행위나 핵개발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동시에 보내며 이란 정권을 강하게 압박했다. 그가 이날 대국민 성명 발표를 위해 연단에 서자마자 카메라 앞에서 꺼낸 첫 마디는 “내가 미국 대통령으로 있는 한 이란은 절대로 핵무기를 갖지 못할 것”이었다. 그는 “1979년 이후 국가들은 중동에서 이란의 파괴적인 행동을 견뎌야 했지만 이제 그런 날들은 끝났다”며 “우리는 이란이 테러활동을 주도적으로 지원하고 핵무기를 개발해 문명사회를 위협하는 것을 더 이상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의 폭살(爆殺)을 놓고 이란의 반발은 물론 국내에서도 비판이 나오는 상황을 염두에 둔 듯 드론 공격의 정당성도 역설했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미국을 겨냥한 공격을 모의하고 있었던 것을 막아냈다는 것. 그는 ”솔레이마니의 손은 미국인과 이란인의 피로 물들어 있었다“며 ”그를 제거함으로써 테러리스트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보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셰일오일 개발로 에너지 자립을 이뤄낸 점을 바탕으로 대(對)중동정책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한 발언도 주목할 부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년간 나의 리더십 하에서 우리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며 미국은 에너지 자립을 이뤄냈다“며 ”이런 역사적인 성취는 우리의 전략적 우선순위를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중동에서의 다른 선택이 가능해졌다“며 ”우리는 독립적이며, 더 이상 중동의 석유가 필요없다“고 단언했다. 이와 함께 ”나는 오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중동에 더 관여할 것을 촉구하겠다“며 향후 미국은 중동문제에서 발을 빼고 유럽의 이웃국가들이 그 자리를 메워야 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워싱턴=이정은특파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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