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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허망하게 아이들을 잃을 건가[동아 시론/정익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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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허망하게 아이들을 잃을 건가[동아 시론/정익중]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입력 2020-01-08 03:00수정 2020-01-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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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연이은 아동학대 사망 사건… 양육은 부모와 국가의 공동 책임
학대 징후 찾아낼 시스템 만들고 전담 조사팀 신설해 비극 막아야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한국아동복지학회장
지난해 12월 31일 대전에서 30대 남성이 자신의 네 살 아들을 목 졸라 죽였다. 경찰에 따르면 숨진 아이의 여섯 살 난 형은 아빠가 동생을 죽이는 모습을 옆에서 고스란히 목격했다. 그보다 5일 전에는 서울 관악구에서 부모가 다섯 살 딸을 여행가방에 가둬 죽였다. 성탄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터진 비극이었다.

초저출산 문제가 심각해 아이 한 명이 소중한 지금, 매달 두세 명의 아이가 아동학대로 사망하고 있다. 부모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에 자녀를 살해하는 ‘부모 자살’에 강제로 동원되거나 치명적 학대 또는 방임으로 죽곤 한다. 자녀 살해 후 부모가 자살하는 사건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그 비율이 매우 높다. 피해 자녀는 죽음의 의미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저항도 못 하고 꿈을 키울 기회마저 빼앗긴 것이다.

국가가 부모에게만 양육 책임을 떠맡긴 결과, 삶에 지친 부모가 자녀를 학대하거나 살해하는 일이 벌어진다. ‘책임 못 질 것이면 애초에 낳지 말라’는 댓글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부모뿐만 아니라 국가도 책임을 져야 한다. 모든 사람이 원하면 아이를 낳을 수 있어야 하고, 가족이 힘들 때는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 가족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면 이런 비극이 생긴다는 것을 아이들의 허망한 죽음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국가는 어떻게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 먼저 부모에게 학대 및 살해를 당하는 아이가 더 이상 없도록 부모 교육을 철저히 진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정부는 보육료, 아동수당을 신청하는 모든 부모에게 아동학대 예방 교육을 실시했다. 그러나 아직은 신청자만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등 선택적 요소가 강하다. 이를 의무화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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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학대 위험에 놓인 아동을 신속하게 찾아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아동보호와 보건의료 체계 간의 연계를 활성화해야 한다. 특히 영·유아 건강검진 제도는 아동학대 조기 발견 시스템으로 활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학대를 판단할 수 있는 문항이 전혀 없다. 검진 항목에 학대 관련 지표를 추가해야 한다. 또 검진이 필수가 아니어서 수검 여부가 주 양육자(부모)의 의지에 달려 있는데 이를 바꿔 의무화해야 한다. 특히 학대 사망 위험이 가장 높은 생후 4개월, 9개월, 만 2세에 이루어지는 초기 3회 검진을 모두 불참하면 공무원이 가정을 방문해 조사하도록 해야 한다. 가정폭력과 아동보호 체계의 연계도 시급하다. 부부 간 폭력이 있는 가정에서 그렇지 않은 가정보다 아동학대가 발생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하지만 가정폭력은 여성가족부가, 아동학대는 보건복지부가 각각 담당하고 있어 절차상 허점이 많다. 따라서 가정폭력으로 신고된 가정에 미성년 자녀가 있다면 이를 아동보호기관에 즉시 통보하는 절차를 구축하고, 관련 정보를 통합해 관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동권리보장원에 ‘아동 사망 사례 조사팀’을 설치해야 한다. 조사팀을 통해 단 한 건의 학대 사망 사례도 놓치지 않도록 점검하고, 학대 대응 체계의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지 밝혀내야 한다. 심각한 사례는 국가 차원에서 진상 조사를 진행하고 지켜내지 못한 아동의 허망한 죽음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어야 한다.

지금도 어디선가 모진 생각을 하고 있을 부모들에게도 제안한다. 제일 간단한 방법으로, 보건복지상담센터(국번 없이 129)나 가족상담전화(1644-6621)로 전화해서 상담을 받아보길 추천한다. 더 이상 탈출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있지만, 실제로 상담을 받아보면 위기에서 벗어나 대안을 찾을 수도 있다. 또 국민이 도움을 청하면 삶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정부와 관련 기관, 언론이 계속 심어줘야 한다. 위기에 처한 가정이 양육의 무한 책임에서 벗어나 쉽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안타깝게도 아동학대 사망 사건은 계속될 것이다.

처음부터 아동보호를 잘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아동을 잘 보호하는 나라들은 아동이 학대 등으로 사망한 사건에서 교훈을 얻고 대대적인 개혁을 진행해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우리도 교훈을 얻는다면 더 늦기 전에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한국아동복지학회장
#아동학대#부모 교육#아동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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