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까 남을까”…대입개편에 ‘탈 대치’ 고민하는 학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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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1월 5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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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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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중3 자녀를 둔 학부모 A 씨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강북으로 이사를 고민 중이다. 아이가 옮길 수 있는 고교 두세 곳을 알아보고 직접 주변 분위기도 살피고 있다. A 씨의 자녀는 현재 전교 20위 권. 이 정도면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난해 말 교육부가 발표한 대입 개편안 탓에 불안이 커졌다.

학부모 사이에 이른바 교육특구 특히 대치동 고교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 관리에 적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교과 활동이 다양하고 수상실적도 많아서다. 하지만 A 씨 자녀가 대학에 가는 2024학년도부터는 수상실적 같은 비교과 활동이 대부분 폐지된다. 특히 올해부터는 대학들이 고교 정보를 확인할 수 없게 된다. A 씨는 “대치동 학교들은 내신 경쟁이 치열한데 대학에서 이를 감안해주지 않으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며 “경쟁이 덜한 학교로 전학 가는게 더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사철 앞두고 커지는 딜레마

겨울방학에는 자녀의 진학을 목적으로 하는 이사 수요가 집중된다. 특히 학원이 많은 대치동 등에 수요가 몰린다. 그런데 학부모들이 주로 이용하는 진학 관련 인터넷 카페에서는 요즘 ‘탈(脫) 대치’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된다.

가장 큰 이유는 교육부가 출신 고교의 ‘후광 효과’를 차단하겠다며 대입에서 학교명을 블라인드 처리하기로 한 것이다. 각 고교가 학생 선발 때 참고해달라며 교육과정이나 성적 정보 등을 대학에 제공하는 고교 프로파일도 폐지된다. 대학은 해당 학생이 어느 지역 일반고 출신인지 알 수 없다. 자율형사립고(자사고)도 마찬가지다. 교육과정이 크게 다른 전국단위 자사고를 빼고 광역단위 자사고는 지역 구분이 어렵다. 정부의 일반고 전환 방침에도 불구하고 2020학년도 전국 단위 자사고의 경쟁률은 오르고, 서울 지역 자사고는 하락한 것도 이 때문으로 해석된다.

물론 이전에도 ‘탈 대치’ 선택은 있었다. 대입에서 수시 비중이 70~80%에 달하자 상대적으로 내신이 유리한 지역으로 향한 것이다. 그래도 대다수는 ‘단순히 성적만 보는 게 아니다, 학종 관리에 유리하다’며 버텼다. 그러나 이번 대입 개편안의 폭이 워낙 커 학부모들이 자녀 진학을 놓고 더욱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일부는 농어촌전형을 노리고 ‘탈 대치’하려는 경우도 있다. 서울과 너무 멀지 않으면서 대입 때 농어촌전형 지원이 가능한 학교가 인기다. 학부모 B 씨는 “일부 대치동 입시컨설팅 업체에서 경기 남양주의 특정고교를 추천하기도 한다. 주중에는 내신 관리하고 주말에는 대치동 학원을 다니라는 전략을 제시한다”고 전했다.

설 명절 이후 표면화 전망

선뜻 ‘탈 대치’를 결정하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 정부가 2023학년도까지 서울 소재 대학 16곳의 정시 비중을 40%까지 확대하기로 해서다. 전반적으로 보면 수시 비중이 여전히 크지만, 상위권 대학의 전형 비중이 바뀌는 만큼 정시도 소홀할 수 없는 것. 대치동의 사교육 환경이 수능 대비에 뛰어나다는 평가 탓이다.

그래서 대치동을 떠난 뒤에도 주말에는 대치동 학원가를 향하는 학부모도 많다. 학부모 C 씨는 “대치동에 남아있는 건 유명한 학원이 많고 모두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분위기 때문인데 여기를 떠났다가 노는 분위기에 휩쓸려 성적이 더 떨어질까 두렵기도 하다”고 했다.

현재는 전반적으로 신중한 분위기이다. 아직까지는 ‘탈 대치’ 선택이 극소수이고, 여전히 전입 행렬이 많다는 지적이다. 설 명절 이후 움직임을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다. 대치동 D초교 관계자는 “서울지역 전체적으로 학급당 인원이 줄지만 대치동은 증가세”라며 “초교도 전입학이 끊이지 않지만 특히 중고교는 위장전입 가능성 때문에 교사와 학부모들이 아침이나 밤에 실제 학생이 사는지 조사 나가는 게 일”이라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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