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지 말고 솔직하게[김창기의 음악상담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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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이글스의 ‘Take It Easy’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밝았습니다. 돌아보면 지난 몇 년 열심히 산다고 하면서 늘 같은 생활을 허겁지겁 투덜거리면서 반복해 왔습니다. 시작도 못 해본 작년의 다짐과 계획들을 다시 되뇌지만, 아마 내년에도 같은 후회를 반복하게 될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왜 이렇게 빨라지는 걸까요? 목표에 매진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라고 자위하지만, 사실 변화와 발전이 어렵기에 미루고 회피하며 익숙한 길로만 갔던 것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노년으로 다가가는 제 입장에서 보면, 앞으로 대단한 변화와 발전이 가능할 것 같지도, 필요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냥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주변과 잘 조화를 이루며 즐겁게 살고, 더 나아가서는 서로 사랑하고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드는 것도 힘들어 보이니까요.

‘해야 할 일들’에만 쫓기지 않고 삶을 흑백에서 컬러로 바꾸려면 천천히 변화를 주며 살아야 합니다. 하늘을 바라보기 위해 잠시 멈춰 서지는 못하더라도 천천히 걸으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여유를 끼워 넣으려면 불안을 다스려야 하죠. 불안은 학습된 습관입니다. 주변을 둘러보세요. 중년 이상의 연령이 되면 다 엇비슷합니다. 이젠 불안보다는 수긍과 적응이 더 필요하죠.

오늘 소개하는 이글스의 ‘서두르지 말고 걱정하지 마’의 가사를 들어보세요. ‘서두르지 말고 걱정하지 마! 조바심이 너를 미치게 만들지 마. 아직 웃을 수 있을 때 웃고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해야 해.’ 이 노래의 앞부분은 ‘The Load Out & Stay’로 한국에서 사랑받는 잭슨 브라운이 유명해지기 전에 만들었습니다. 브라운이 살던 낡은 아파트 위층에는 나중에 이글스의 리더가 된 글렌 프레이가 살았는데, 프레이가 창문을 통해 노래를 듣고 서두르지 말고 걱정하지 말라는 후렴 부분을 만들었죠. 그렇게 후다닥 만들어진 ‘Take It Easy’는 전설이 된 이글스의 첫 앨범의 첫 노래가 되었답니다. 컨트리 록의 시초이기도 하죠.

시간이 너무 빠르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결국 즐거움과 삶의 의미죠. 그리고 그것들은 혼자 조용히 사색하는 시간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의 조화에서 경험될 수 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은 만들기 쉽지만 소중한 사람들과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상대방을 위한 이해와 배려가 지속적으로 필요하기에 어렵죠. 하지만 진정한 삶의 의미의 전제조건은 안정적이고 친밀한 관계입니다. 함께 잘 나누려면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힘이 되어줘야 합니다. 나 자신도 초라하고 연약할 수 있지만 가식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해와 위로를 구해야 합니다. 서로를 신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편안함과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고, 웃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글스#take it e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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