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영 작가의 오늘 뭐 먹지?]한국식 유산슬, 아삭 쫀득 걸쭉 세 박자의 별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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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호화반점’의 유산슬밥. 임선영 작가 제공
서울 강남구 ‘호화반점’의 유산슬밥. 임선영 작가 제공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MC 유재석이 유산슬 말고 팔보채나 양장피로 예명을 지었으면 어땠을까.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서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는 그의 모습은 친근하고도 신비감이 있었다. 그의 노래를 한 번 들으면 뭐 딱히 특별할 것도 없지만 다시 보게 되는 중독성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중국집의 별미 유산슬의 맛이다.

연세가 일흔 이상 되신 어르신들은 화상(華商)의 중국집을 청요리점이라 부른다. 청요리점의 톱3는 팔보채 양장피 유산슬인데, 그중 가격은 가장 저렴하지만 시켜 놓고 보면 고급스럽고 양이 푸짐하기에 유산슬은 단연코 인기였다. 유산슬은 ‘류싼쓰(溜三絲)’라는 중국어 발음이 한국화되어 정착된 이름이다. 고기, 해산물, 야채를 실처럼 채 썰어 볶아낸 후 전분으로 소스를 걸쭉하게 만들어 낸다. 주재료는 돼지고기, 해삼, 죽순이며 새우와 버섯이 들어가서 향이 풍만해진다. 얼핏 보면 팔보채와 별 차이 없지만 팔보채는 재료를 큼직하게 썰고 소스에 고추기름을 부어 끝 맛이 살짝 매콤하다.

유산슬은 중국 요리라기보다는 한국식 중화요리에 가깝다. 정작 중국에 가면 유산슬이라는 요리를 찾아내기 어렵다. 비슷한 요리로 윈난성과 구이저우성 일대에 ‘추류싼쓰’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감자 고구마 호박을 가늘게 썰어 기름에 볶아내고 소금과 설탕, 식초로만 맛을 낸 가정식이다. 일찍이 한국에 정착한 화상 요리사들이 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야채볶음을 비싸게 받을 수 없으니 고기와 해산물을 더하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양념을 부드럽게 조율하여 지금의 유산슬을 완성했다.

유산슬을 잘하는 중국집은 조리법이 남다르다. 아삭하고 쫀득하며 걸쭉한 세 박자를 절묘하게 살린다. 우선 고기와 죽순은 기름에 볶아내고 해삼과 버섯은 뭉근하게 데쳐낸다. 그래야 고기는 쫀득하고 죽순은 아삭하며 해삼과 버섯은 젤리처럼 말캉말캉 씹힌다.

유산슬 맛집을 찾으려면 역사가 오랜 중국집을 가는 것이 좋다. 1978년 문을 연 호화반점은 1인분으로 유산슬밥을 해주는데 재료가 신선하고 옛날 원조의 맛을 고스란히 지켜낸다. 함께 내어주는 칼칼한 짬뽕 국물이 속을 후끈하게 만든다. 1967년에 문을 연 동성각은 특별한 메뉴 동성면이 있는데 유산슬에 마파두부 소스를 더해 면과 함께 비벼주는 요리다. 40년 역사를 이어온 부산의 금룡은 유산슬을 할 때 깨끗한 기름을 써서 조금 오래 볶아낸다. 해산물과 버섯이 푸짐하고 입에 넣으면 잇몸으로도 씹을 만큼 부드럽다.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 호화반점=서울 강남구 압구정로54길 4, 유산슬밥 1만2000원, 유산슬 3만2000원

○ 동성각=서울 종로구 새문안로9길 29-2, 유산슬밥 1만5000원, 유산슬 4만3000원

○ 금룡=부산 부산진구 중앙대로702번길 17-1, 유산슬밥 1만3000원, 유산슬 3만 원
#팔보채#양장피#유산슬#청요리점#중화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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