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열리는 中 금융시장[횡설수설/이태훈]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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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은행 영업점에는 고객 창구에 방탄유리가 있다. 은행 업무는 방탄유리에 뚫린 구멍을 통해 대화하며 본다. 소리가 잘 안 들리다 보니 고객과 직원 간 대화는 주로 마이크를 활용한다. 직원들이 고압적으로 고객을 대하는 통에 중국에 가서 처음 은행 거래를 하는 외국인은 당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베이징 같은 대도시부터 시골까지 중국의 모든 은행이 비슷한 풍경이다.

▷중국 은행에 방탄유리가 설치된 것은 강도 등 도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 일차적인 이유다. 중국은 국토 면적이 방대하고 국가 시스템이 미비해 범죄를 저지른 뒤 다른 성(省)으로 도망가면 잡기가 어렵다. 다른 성에 갔다가 교통범칙금을 부과받아도 원래 살던 곳으로 딱지가 날아오지 않을 정도다. 오랜 사회주의 체제에서 중국인들 사이에 형성된 ‘서로 못 믿는’ 문화가 은행 방탄유리에 아직도 투영돼 있다.

▷이런 ‘저(低)신뢰 사회’ 중국이 외국인에게 금융시장을 전면 개방한다. 보험회사와 선물회사, 증권사를 소유하는 외국인의 지분 제한을 없애 외국계 자본의 100% 지분 소유와 자유로운 영업이 가능해진다. 1일부터 외국인 소유 보험회사와 선물회사의 영업이 허용됐고, 4월에는 외국계 자산운용사, 12월에는 외국인 소유 증권사 설립이 시작된다. 인구 14억 명의 거대 시장이 열린다는 것은 해외 투자자들에게 큰 기회다. 블룸버그는 개방되는 중국 금융시장의 규모를 45조 달러로 추정했다. 이미 선진국 금융회사들이 중국에 금융회사 설립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금융시장 개방은 중국이 외국 자본의 유입을 늘려 경제에 활력을 주고 낙후한 금융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다. 중국은 나름의 스케줄에 따라 금융시장 개방을 확대해 오고 있었으나 미중 무역전쟁 격화로 개방 일정이 앞당겨진 측면이 크다. 미국의 압박에 떠밀린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금융 경쟁력이 뛰어난 미국으로선 중국의 시장을 개방시키면 그만큼 손쉽게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현대경제연구원 주원 경제연구실장)

▷한국은 1990년 외국인에게 보험업을 개방하고 1992년엔 외국인 주식 투자를 10%까지 허용하는 등 금융시장을 개방했다. 중국도 우리처럼 외국인의 주식 취득 한도를 30%로 제한해 급격한 해외 자금 유출에 대비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지방은행에서 예금 인출 사태가 일어나고 지방정부와 기업의 과도한 부채 문제가 불거지는 등 부실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금융시장을 개방한다고 하니 금융시장 개방 이후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과 태국처럼 중국도 경제위기를 겪을지 모른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이태훈 논설위원 jefflee@donga.com
#중국 금융개방#미중 무역전쟁#외환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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