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중화제국의 속국으로 살 것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8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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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친일파’의 반대말은 ‘친중파’인 것 같다. “청산하지 못한 친일세력이 독재세력으로 이어졌다”며 우파=친일파로 낙인찍은 문재인 정부였다. 일본에는 의전 결례도 격하게 유감을 밝히면서 중국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다.

홍콩 민주화시위와 신장 인권탄압에 대해 문 대통령이 ‘중국의 내정’이라고 말했다고 23일 중국 언론은 일제히 전했다. 보도가 맞는다면, 문재인 정부는 친중파를 넘어 종중(從中)이라고 할 판이다.

● 설마 중국의 인권탄압도 내로남불?

당연히 청와대는 부인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발언을 잘 들었다는 취지였다는 거다. 그러나 중국에 유감을 표하지도, 정정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CCTV나 영문 공식 포털엔 지금도 문 대통령의 당시 발언을 영문으로 옮긴 문장("Both Hong Kong affairs and issues concerning Xinjiang are China's internal affairs," Moon said.)이 인용부호까지 붙여 걸려 있다.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 홈페이지 캡쳐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 홈페이지 캡쳐

홍콩과 신장의 인권 탄압은 인류 보편적 가치의 문제여서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 지도자들이 시진핑에 대놓고 지적하는 이슈다. 설령 시진핑이 내정 문제라고 해도 문명국가의 지도자라면 “잘 들었다”가 아니라 인권의 중요성을 표명했어야 옳다.

일본의 결례는 우리끼리 일이다. 그러나 홍콩과 신장 문제에서 한국이 중국 편에 섰다면 국제 망신이 된다. 중국의 언론플레이에 당했대도 마찬가지다. 청와대가 여기서 내로남불 하듯 중국서도 ‘우리 편이니까 내로남불’ 아닌지 의심스럽다. 만약 일본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벌써 나라가 뒤집어졌다.

● 조선의 근대화, 청나라가 좌절시켰다

요즘 주류계급에서 “친일파” 외치면 욕이다. 물론 일본의 식민 지배로 겪은 수난과 고통의 역사를 잊을 순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조선의 망국을 일본 때문으로 돌리지, 그 전에 청나라가 중화제국의 부활을 외치며 조선의 국권을 침탈한 역사는 잘 모른다.

1876년 개항 뒤 우리가 우리 힘으로 근대화에 매진할 수 있는 천금같은 시기가 있었다. 그 때 식민지 종주국보다 더한 간섭과 이권 탈취로 마지막 개혁 기회를 빼앗아선 조선을 망국으로 떠민 나라가 중국이었다.

중국몽(中國夢)이라는 구호 아래 중화제국을 부활시키겠다며 한반도 남북 전체를 장악하려 드는 시진핑을 보다 못해 이양자 동의대 명예교수가 역저를 재출간했다. ‘감국대신(監國大臣) 위안스카이’. 부제(副題)가 모든 걸 말해준다. ‘좌절한 조선의 근대와 중국의 간섭’.

‘감국대신 위안스카이’ 표지
‘감국대신 위안스카이’ 표지

● 대원군을 강제로 수레에 태운 위안스카이

“중국이나 일본보다 20년 이상 늦게 개항한 조선은 개방과 개혁 시작부터 위안스카이 등 청국 세력에 정치·군사·경제적으로 속박돼 자주적 개혁의 기회를 상실했다. 위안스카이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 중국이 조선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의 정세와 맞물려 새로운 의미를 시사할 것이다.”

난세의 영웅(또는 간웅)으로 유명한 위안스카이(1859~1916)가 훗날 중화제국의 황제가 된 것도 젊은 날 조선에서 익힌 정치력과 권모술수 덕분이다. 청군(淸軍)이 1882년 임오군란 진압을 구실로 조선 땅을 밟을 때 그는 스물 세 살의 미관말직이었다.

군 책임자가 대원군을 본국으로 끌고 가려고 병영까지 불러놓고도 결단을 못 내리자 위안스카이는 “지체하면 변이 난다”며 덥석 대원군을 수레에 밀어 넣은 간덩어리의 소유자였다. 갑신정변 때는 본국의 승인 없이 병력을 동원해 진압하고는, 고종을 자신의 병영에 옮겨 독립당의 후환을 없앨 만큼 간교하고 치밀했다.

● 평화 외치며 무장해제 하면 다 되나


조선 종주권을 되찾은 위안스카이는 1894년 청일전쟁까지 식민지 총독처럼 군림했다. 조선과 첫 통상조약을 맺은 건 일본이지만, 아편전쟁 이래 동아시아에서 체결된 구미의 불평등조약 중에서도 유례가 없는 무자비한 조약을 강제한 나라가 중국이다. 일본과 1905년 을사늑약을 맺기 전에 우리나라는 빈사(瀕死)의 길로 들어선 형국이었다.

한 나라의 군사력은, 군 복무를 하지 않은 내가 감히 말한다면, 다른 어떤 것보다 어마어마어마하게 중요하다. 대통령이 평화를 외치기만 하면 북한 김정은이, 중국 시진핑이 천사가 될 것 같은가.

역사를 아는 우리는 1885년 위안스카이가 고종에게 “조·청(朝·淸) 양국은 존망을 같이 하는 바 조선이 만약 러시아의 침략을 받으면 청이 전력을 다해 구호할 것”이라고 올린 적간론(摘姦論) 상소를 보면 가소롭다. 청나라도, 러시아도 일본과의 전쟁에서 대패해 물러날 운명인데 누가 누구를 지켜준단 말인가.

● 위안스카이의 후예가 몰려오고 있다


이달 초 방한했던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우리 정관재계 인사들을 대거 급소집한 장면은 위안스카이의 환생 같았다. “대국이라고 소국을 깔보거나, 힘을 얻고 약자를 모욕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일장연설은 완전 내로남불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왕이 중국 외교부장.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우리 집권세력의 내로남불을 보고 왕이가 배웠는지, 운동권 청와대가 중국공산당에서 내로남불을 배웠는지는 알 수 없다. 일본 식민 지배의 만행은 후벼 파면서 중국의 악행에는 과거 현재 불문하는 것이 기막힐 뿐이다. 법과 제도에서 법치와 인권을 무시하는 중국 모델을 격하게 따라가는 데는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미 중국서 온 유학생들은 홍콩 민주화를 지지하는 우리 대학생들에게 오만방자한 행태를 서슴지 않고 있다. 중국유학생 74.6%가 공산당·공청단 소속이라는 인천대 2016년 실태조사를 보면 이유가 능히 짐작된다. 새로 올 주한 중국대사 싱하이밍은 2004년 우리 여야 의원들에게 대만 총통 취임식에 가지 말라고 종용했던 황당무례한 전력이 있다. 조공질서 속의 종주국 상전들처럼 이들의 기고만장이 하늘을 찌를 조짐이다.

● 안보 위협국이 중국인가, 일본인가


반만년 역사 가운데 우리나라가 중국 앞에 당당했던 시간이 불과 수 십 년이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만으로는 불가능했다. 한미동맹이 있어 가능했고, 일본이 후방에 있어 6·25 때 중공군도 밀어내고 경제개발의 토대를 닦을 수 있었다.

앞이 안 보이던 그 엄혹한 시절, 자유세계의 편에 선 건국의 아버지들 선택에 감사한다. 그러지 않았다면 한반도 전체가 김일성왕국일 것이다. 대한민국이 탄생하기 이전, 그러니까 우리가 고칠 수도 없는 과거에 목매지 말고 현실을 바로 봤으면 한다. 지금 우리의 안보와 존립을 위협하는 나라가 일본인가, 중국인가.

내년 상반기 시진핑의 방한을 성사시키려 또 어떤 굴욕을 당할지 두렵다. ‘일본 카드’는 중국에 맞서는 힘이 될 수도 있다. 내 딸이 중국인들 발마사지나 하며 살게 될까봐 피눈물이 나서 하는 소리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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