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중 국민당 후보도 “일국양제 반대”… ‘망국감’이 지배하는 대만 대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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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
차이잉원 “민주 없이 경제발전 없다”… 한궈위 “중화민국 주권 수호할 것”
홍콩 사태 두렵다 vs 대륙 대항 불가
시진핑 대만통일론 집권당 유리하게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우리는 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 2체제)를 반대합니다!”

내년 1월 11일로 예정된 대만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13일 저녁. 대만 중서부 도시 타이중(臺中)에서 열린 선거 유세장에선 이런 주장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놀라운 대목은 이곳이 반중(反中) 성향의 집권 민진당 유세 현장이 아니라 친중(親中) 정당으로 불리는 국민당의 유세 현장이라는 점이었다. 국민당 대선 후보 한궈위(韓國瑜) 가오슝(高雄) 시장이 등장하기 직전 우둔이(吳敦義) 국민당 주석은 이렇게 외친 뒤 “우리는 차이잉원(蔡英文)도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차이잉원은 대만 현 총통이자 재선에 도전하는 민진당 대선 후보다.

○ 친중 한궈위 “일국양제, 환영 못 받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첫 공개행보였던 1월 2일 ‘대만 동포에 고하는 글’ 발표 4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홍콩과 마카오에 적용해온 일국양제 방식으로 대만을 통일하겠다고 선포했다. 이를 잘 아는 친중 국민당마저 일국양제를 반대한다고 천명한 것이다. 중국에 대한 두려움이 대만 대선을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우 주석은 그러면서도 중국과 경제교류를 회복해 민생을 개선해야 한다며 국민당의 선거 슬로건인 “타이완안취안, 런민유취안(臺灣安全人民有錢)”을 외쳤다. 대만의 안전과 국민 경제 성장을 강조한 것.

이날 타이중 선거본부 창립 대회장에 모인 수천 명의 지지자들은 대부분 중장년층이었다. 한 시장이 등장하자 일제히 대만기를 흔들어 붉고 푸른 물결을 이뤘다. “총통 하오(好·안녕하세요)!” “한궈위 둥쏸(凍蒜)!”을 외쳤다. 둥쏸은 대만 현지어인 민난(민南)어로 ‘얼린 마늘’이라는 뜻이다. ‘당선’과 발음이 같아 대만선거 유세장에서 당선을 기원할 때 쓴다. 한 시장 지지자인 잔(詹·55)모 씨는 기자에게 “대만이 독립하지 않아야 중국 대륙에서 관광객이 오고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세 살짜리 자녀를 데리고 온 황(黃·32·여)모 씨는 “대륙과 계속 대항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한 시장은 “대만이 하루하루 몰락하고 있다. 민진당의 집권 3년 반은 사기였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중국과 대만 관계를 가리키는 양안관계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올해 6월 홍콩의 반중(反中) 시위가 격화된 이후 크게 하락한 지지율을 염두에 둔 제스처로 보였다. 그는 14일 타이중 남서부 장화(彰化)현에서는 “내가 당선되면 반드시 중화민국의 주권을 수호할 것이다. 경제를 부양하고 다음 세대를 키우는 데 모든 힘을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시장을 찍는 것은 대만의 주권을 중국에 넘기는 것이라는 민진당의 주장에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 차이잉원 “민주 없는 홍콩 경제둔화”

홍콩 사태 이후 지지율이 급등한 차이 총통은 14일 오후 타이완 남서부 도시 타이난(臺南) 유세에서 민진당만이 민주주의와 자유를 수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타이난 선거본부 창립 대회에 참석한 차이 총통은 민난어와 표준 중국어인 푸퉁(普通)화를 섞어 가며 큰 소리로 외쳤다. “민주주의와 자유가 없으면 건강한 경제도 불가능합니다. 우리 모두 홍콩(에서 일어난 일)을 봤습니다. 민주주의가 없고 자유를 보장받지 못해 시민들의 믿음이 사라지고 경제가 둔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일국양제를 걱정한다”며 “제가 총통이 되면 여러분에게 보증한다. 일국양제는 불가능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3일 타이난 북부 자이(嘉義)현 유세에서는 “국민당이 문명(文明)의 규정을 파괴하고 있다”며 “문명의 규정에는 대만을 팔아먹을 수 없다는 한 가지 규정만 있다”고 주장했다.

14일 타이난 유세 현장에 모인 수천 명의 차이 총통 지지자들은 중장년층도 많았지만 20대 젊은층, 어린 자녀를 데리고 나온 30, 40대 젊은 부부들도 쉽게 눈에 띄었다. 차이 총통이 유세장에 등장하자 지지자들이 일제히 “차이잉원 둥쏸! 대만이 이긴다!”를 외쳤다. 민진당의 상징색인 녹색기 물결이 펼쳐졌다.

대학교 4학년인 청(程·22)모 씨는 기자와 만나 “홍콩의 현재 상황은 왕궈간(亡國感)을 생각나게 한다”며 “중국 대륙이 대만과 평화롭게 교류할 때만 그들을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왕궈간’은 이번 대만 대선을 규정하는 핵심 키워드다. 대만에 대한 중국의 압박과 홍콩의 반중 시위로 대만인들이 주권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대만의 젊은이들은 톈란두(天然獨)”라고도 말했다. 지금 대만의 젊은층은 어릴 때부터 대만이 주권 독립 국가라고 생각하며 자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톈란두들은 일국양제를 받아들이면 바로 홍콩처럼 감시와 통제를 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타이베이(臺北)에서 만난 차이 총통 지지자 린(林·69)모 씨도 “대만인들은 중국 공산당이 전체정치를 하고 자유와 민주주의가 없다고 생각해 공산당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타이난에서 만난 치우(丘·60)모 씨는 “대만인들은 언론 자유가 없는 대륙 정부에 의해 통제당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지금 대만에 친중은 없다”

13일 오전 대만에서 가장 오래되고 저명한 싱크탱크인 타이베이 국립정치대 동아시아연구소 왕신셴(王信賢) 소장을 만났다. 대선 국면에서 대만 언론은 물론 외신의 인터뷰도 거절해오던 그는 이번 대선의 이슈가 경제에서 안보 문제로 옮겨간 과정을 설명했다.

―이번 대선의 특징은….

“지난해 11월 지방선거에서 국민당이 대승했다. 하지만 매우 짧은 시간에 상황이 변했다. 외부 요인 때문이다. 2가지가 중요하다. 하나는 올해 초 시 주석의 ‘대만 동포에 고하는 글’ 40주년 기념 연설이다. 다른 하나는 홍콩 문제다. 이 두 사건으로 대만 선거의 주축이 경제 이슈에서 안보 문제로 변했다.”

―왜 그런가?

“시 주석의 연설에 민진당 정부가 즉각 반격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선거 캠페인에 활용하면서 대만인들은 (중국에 의한) 통일이 가까워지는 것 아니냐는 공포, 즉 ‘왕궈간’이 생겼다. 여기에 홍콩 사태가 결합되면서 대만인들은 ‘일국양제가 저런 모습이구나’라고 느꼈다. 전에는 통일이냐 독립이냐를 말하던 민진당 정부가 올해 민주주의 수호를 말하기 시작했다. 통일 문제는 이견이 있는 문제다. 하지만 제도이자 생활방식인 민주주의는 대만에서 완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특히 그런가?

“홍콩 사태가 젊은이들의 정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 우리 대학에서도 매년 100명이 대륙에 교환학생으로 갔지만 이젠 학생들이 가려 하지 않는다.”

―대선이 양안관계와 미중관계에 미칠 영향은….

“국민당 후보가 당선돼도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총통 집권(2008∼2016년) 상황(중국과의 좋은 관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만 국방은 전략적으로 미국에 의존한다. 중국에 공포를 느낀다. 누가 당선되든 미중 경쟁구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 미국과 관계를 강화할 것이다.”

―현재 대만에 실제로는 친중이 없다는 뜻인가.

“그렇다. 친중은 없다. 베이징의 일국양제와 통치를 거부하는 것이 현재 대만 내 컨센서스다. 중국에 대항하지 않고 중국을 이해하고 상호 교류해야 한다고 하면 공격당해 밀려나는 게 현재 대만의 정치 분위기다.”

―이런 상황이 왜 생겼나.

“외부 환경은 민진당이나 국민당이 조성한 게 아니다. 시 주석과 떼어놓을 수 없다. 시 주석의 1월 연설이 의도가 있었는지, 판단 착오였는지 중요하다. 대륙 학자들은 통일의 주도권을 확실히 잡기 위한 의도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판단 착오라면 권력이 집중되면서 (중국 지도부 내에)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중국 내 대만 관련 부처의 정보 보고 시스템과 정세 판단에 문제가 생겼다고 볼 수도 있다.”

―타이베이·타이중·타이난에서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
#대만 대선#일국양제#차이잉원#한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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