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도전적인 사람들로 세대교체 해야”… 70세 되던 해에 창업 원로들과 동반퇴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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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 LG명예회장 별세]
국내 대기업 첫 자발적 승계 결단… 은퇴후 연구소 만들어 버섯 재배

고 구자경 LG 명예회장은 70세이던 1995년 2월, 25년간 맡아 온 회장직을 스스로 놓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젊고 도전적인 사람들로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는 국내 최초의 대기업 ‘무고(無故) 승계’로 기록되며 경영계에 귀감이 됐다.

구 명예회장은 당시 이임사에서 “그동안 경영혁신을 추진해 오면서 우리도 얼마든지 세계 수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이 요구되는 이 시점에서 나의 역할을 마치고자 한다”고 밝혔다.

구 명예회장은 당시 장남인 구본무 회장(2018년 작고)에게 회장직을 넘기면서 그룹 발전에 공헌한 창업세대 원로들과 동반 퇴진했다. 고 허준구 LG전선 회장, 고 구평회 LG상사 회장, 고 허신구 LG석유화학 회장 등이 함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구 명예회장은 이임식 전날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 2세 원로들을 모두 모아 놓고 ‘나가자’고 말한 것은 아니다. 몇 사람에게 내 생각을 말했지만 강요한 것은 아니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고인은 은퇴 이후 임종할 때까지 24년간 취미생활을 즐기는 소탈한 삶을 보냈다. 1992년경 ‘국내에 버섯 공장은 여럿 있어도 버섯의 균사를 직접 배양하는 종균(種菌)하는 곳은 없다’는 말을 듣고 버섯 재배에도 힘썼다. 어느새 개인 연구실까지 만들어 버섯 연구를 이어갔다.

2005년 LG그룹에서 에너지, 홈쇼핑, 건설 등의 계열사가 GS그룹으로 분리되는 과정에서도 구 명예회장의 경영 철학이 작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해졌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주는 ‘한번 사귀면 헤어지지 말고 부득이 헤어지더라도 적이 되지 말라’는 유지를 구 명예회장에게 남겼고, 구 명예회장 역시 인화를 강조해 왔기에 LG와 GS는 경영권 분쟁 등 불화 없이 ‘아름다운 이별’을 맺었다는 것이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구자경 lg 명예회장#lg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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