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억으로 커진 새벽 배송 시장에도…배달차량 교통안전 사각지대는 ‘여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2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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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불법주정차 유발하는 화물차, 택배차량, 이륜차 위해 서울시가 인도 확장 공사를 하며 함께 서울 중구 회현역 주변에 조성한 화물차, 이륜차 조업 공간. 전영한 기자
도심 불법주정차 유발하는 화물차, 택배차량, 이륜차 위해 서울시가 인도 확장 공사를 하며 함께 서울 중구 회현역 주변에 조성한 화물차, 이륜차 조업 공간. 전영한 기자
19일 오후 10시 50분경. 대전시의 한 왕복 4차로 도로. 흰색 화물차 한 대가 주행차로인 1차로를 똑바로 달리지 못하고 차선을 넘나들었다. 1t짜리 택배차량이었다. 인근에서 저녁식사 모임을 마친 A 씨 일행 4명이 마침 길을 건너고 있었다. 화물차 운전자는 횡단보도가 아닌 곳으로 건너던 이들은 발견하지 못하고 중앙선을 넘어 A 씨 일행을 치었다. 당시 사고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CC)TV를 보면 화물차는 갑자기 방향이 꺾어지면서 중앙선을 넘었다. 이 사고로 2명이 목숨을 잃었고 1명이 다쳤다. 사고 경위를 조사한 경찰은 화물차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한 것으로 봤다.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배달 물량 증가와 유통업체 간의 배송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 지면서 늦은 밤이나 새벽시간대 도로를 달리는 화물 차량이 많아졌다. 요즘은 이른바 ‘새벽 배송’을 앞세워 강조하는 식품업체들도 많아졌다. 업계에 따르면 2015년 100억 원대였던 새벽 배송 시장 규모가 지난해에는 4000억 원을 넘어섰고 올해는 작년의 2배인 8000억 원가량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운수업 조사 잠정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육상운송업 중 도로화물 분야 업체 수는 19만4107개로 전년보다 4.4% 증가했다. 종사자 수는 45만1614명으로 1.9% 늘었고 매출액은 약 36조1590억 원으로 2.3% 많아졌다. 통계청은 “1t 이하의 소형 용달화물 차량 증가가 눈에 띤다고 분석했다.

새벽 배송으로 대표되는 택배운송업계의 치열한 경쟁으로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시간대에 운행하는 화물차량이 증가하면서 사고도 많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1~9월 국내의 한 손해보험사에 접수된 화물차 사고 중 오후 10시~다음날 오전 6시에 발생한 사고는 1021건이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79건에 비해 13배나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오전 6시~오후 10시에 발생한 사고가 1971건에서 2310건으로 1.2배가량 늘어난 것과는 차이가 크게 난다. 지난해 8월에도 오전 5시 20경 서울의 한 고가도로에서 택배용 1t 화물차량이 앞서가던 승합차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들이받으면서 8m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화물차 운전사가 4시간을 운전하면 30분 동안 의무적으로 쉬게 하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이 2017년부터 시행 중이지만 위반 사례를 적발하기가 쉽지 않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운행하는 차량들은 과속을 하는 경우가 잦아 한 번 사고가 나면 큰 피해로 이어진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오전 6시~오후 10시 발생한 화물차 교통사고의 경우 100건당 사망자는 2.9명이었지만 오후 10시~다음 날 오전 6시 발생한 사고는 100건당 사망자가 6.2명으로 2배 이상 많았다. 치킨 가게 등의 음식점이 배달할 때 주로 이용하는 오토바이도 오후 10시~다음 날 오전 6시 발생 사고 100건당 사망자가 3.9명으로 그 외 시간의 2.5명보다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화물차량의 상당수가 물류회사 소속이 아닌 개인용 차량이라는 점도 사고를 부추기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택배 차량 운전사의 대부분은 자신이 소유한 화물차를 갖고 택배회사와 계약해 배송할 물량을 받는 이른바 ‘지입제’ 구조에서 일을 한다. 택배기사가 택배회사의 유니폼을 입고 있어도 법적인 신분은 개인사업자인 것이다. 실어 나르는 물량에 따라 손에 쥐게 되는 돈의 액수가 달라지기 때문에 과속이나 과로운전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그동안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국토교통부의 지난해 자동차 등록대수 현황보고에 따르면 국내 화물차 359만939대 중 회사 소속이 아닌 개인 소유 차량은 315만2275대로 87.8%에 이른다. 강동수 한국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연구개발원장은 ”화물차 지입제 물류구조에서는 운전자의 이력과 차량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며 ”지금과 같은 지입제 구조에서 화물차가 실어 나르는 물량이 계속 늘어나는 건 사고 발생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지적했다.

최근엔 배달산업이 활기를 띠면서 오토바이를 이용한 배달이 교통안전의 사각지대로 꼽히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산업재해로 숨진 18~24세 중 사망원인이 ‘사업장 외 교통사고’로 표시된 사망자가 6명 있었다. 사업장 외 교통사고는 배달 중 발생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12명이나 됐다. 지난 한 해 동안 618건이었던 퀵서비스 업체의 산업재해 신청 건수가 올 상반기에만 600건이나 됐다. 이성렬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 배송량 증가로 소형 화물차, 오토바이의 교통량이 늘어나나고 있는데 안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며 ”화물차와 오토바이 운행 관련 안전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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