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사회 전복을 꿈꾸는 경비원들의 세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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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경비원의 일기/정지돈 지음/140쪽·1만1200원·현대문학

늘 꼿꼿하게, 사람들이 잘 보이는 곳에 숫자 ‘1’처럼 서 있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행인의 기억에는 거의 남지 않는, ‘0’과 같은 건물 경비원들이 주연과 조연을 맡았다.

여기 등장하는 경비원들은 대체로 지나치게 지적이다. 벤츠 코리아가 입주한 건물을 지키는 이들은 벤츠 코리아 직원과 연애를 꿈꾸기도 하고, 작가 등단을 준비하기도 하며, 사회 전복에 관련한 국제적 행동을 모색하기도 한다. 벤츠 코리아가 입주한 건물은 서울역 맞은편에 있으며 서울로7017을 옆구리에 끼고 있기에 여러모로 상징성이 있다.

짧고 간결하지만 냉소적 유머와 가시를 품은 문장의 향연이 흥미롭다. 가끔 재수 없고 보다 보면 정이 간다. 블로그를 통한 취향의 전시, 인터넷 검색에 의존하는 지성 등을 독특한 형식으로 작품에 녹여냈다. 때로 한 문장 안에서도 염세적 반전이 튀어나온다.

종잡을 수 없는 행간과 문단 간의 의미를 더 들여다보려면 두 번 이상 읽는 수밖에 없다. 1시간짜리 동영상도 5분 만에 넘겨 버리는 시대에 같은 책을 두 번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미친 짓인지도 모른다. 현학적 미로와 유머를 갖춘 데다 분량마저 짧은 이 책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야간 경비원의 일기#정지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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