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때일수록 바다로 나아가자[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24〉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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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장
가난하게 자란 종증조부님은 이재에 밝으셨다. 원산 등의 항구로 가서 명태를 사 부산에서 비싸게 파는 중개무역을 통해 큰 부를 축적했다. 1900년을 전후한 개항기라서 명태의 운반에는 선박을 이용했다. 살기가 어려웠던 조부님도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에 성공했다. 조부님이 1945년 귀국하실 때 어선을 한 척 구입해 오신 덕분으로 우리 집안은 2대에 걸쳐 축산항에서 수산업에 오랫동안 종사했고, 성공적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세월이 흐르면서 어려워진 집안을 일으켜야 했다. 1978년 학비가 없는 한국해양대로 진학했다. 항해사와 선장으로 10년간 바다에서 근무했다. 내가 받는 봉급은 동생들의 유학비를 포함해서 집안의 생활비로 쓰였다. 대학교수 자리도 바다에서 취득한 경험과 선장 자격이 큰 도움이 됐다. 그러니까 4대에 걸쳐 우리 집안은 대대로 바다를 통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돌파구를 찾아왔다. 그러므로 바다는 나에게 있어 곧 현실의 어려움에 대한 타파, 탈출구, 위기 극복의 상징물처럼 됐다.

2009년 로스쿨이 발족했다. 나는 해상법 전공 학생들이 우리나라 로펌에 많이 취업하기를 기대했다. 그렇지만, 해상 사건은 영국 등 해외에서 대부분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의 수요는 적었다. 그나마 사법연수원 출신에게 우선권이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맞춤교육의 형태로 해상법을 학생들에게 지도해 경쟁력을 갖도록 수업을 설계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몇 년간 해상변호사로 선발되지 않았다.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2013년 L과 J 학생이 해상변호사가 꼭 되기를 희망했다. 나는 승선 실습을 해주기로 했다. 2박 3일 동안 부산∼울산∼광양을 거치는 선박에 8월 초 제자들과 같이 올라탔다. 선박의 특유한 사항을 보여주고 전문용어를 설명해 주었다. 이것들이 해상법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알려줬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실무와 연결되니 기쁜 표정들이었다.

마침 선박이 광양항에 밤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새벽기차를 타야 했다. 우리 셋은 역 근처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비장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3학년 2학기에 해외 인턴 다녀와서도 취업이 안 되면 우리끼리 해상 로펌을 하나 만들자.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준비하자며 ‘여수 밤바다’ 노래를 같이 부르면서 전의를 불태웠다.

둘은 그 다음 주 싱가포르로 떠났다. 내가 돌파구로 마련한 또 다른 카드였다. 세계적 대형 로펌에 2주간 실습을 다녀오기로 주선을 했다. 전국 로스쿨 중 첫 시도였다. 9월 말 L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형 로펌에 해상변호사로 선발됐다는 것이다. 나는 너무나 기뻤다. 어떻게 합격이 된 것인지 궁금했다. 로펌에서는 그가 승선 실습을 한 점, 해외 유수의 로펌에서 인턴을 한 점을 좋게 보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로스쿨 졸업생 중 해상변호사 1호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졸업 전 J도 대형 로펌에 취업을 했다.

바다로 나아가 직접 체험한 승선 실습이 그 로펌을 움직인 것이다. 바다 건너 외국 대형 로펌에서의 실습도 외국과 접촉이 많은 우리 해상 로펌에는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나는 확신한다. 돌파구가 필요할 때에는 바다로 나가자. 특히 어려울 때에는 바다로 나가야 한다. 바다는 항상 열려 있고, 우리를 저버리지 않고 성공의 길로 인도해 주기 때문이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장
#바다#로스쿨#해상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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