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단골메뉴[오늘과 내일/김광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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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비 인하·공항 건설 이번도 예외 없어
선거용 정책 없을 수 없지만 정도껏 해야

김광현 논설위원
김광현 논설위원
길거리에 징글벨 노랫소리가 울리면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듯이 정부 당국자나 정치인들의 입에서 통신비 인하 얘기가 나오면 선거가 머지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 사장과 가진 조찬간담회에서 통신비 인하를 꺼냈다. 월 4만 원대 이하라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5세대(5G) 망 구축을 위해 정부도 국회도 적극 지원하겠다는 덕담도 함께 건넸지만 3사 사장은 장관의 통신비 발언에 식사가 제대로 소화나 됐을지 모르겠다.

휴대전화 요금 인하가 선거의 단골 메뉴로 자리 잡은 것은 휴대전화가 나오고부터다. 휴대전화 요금을 낮추겠다는 약속만큼 ‘가성비’ 높은 선거용 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세금을 올리면 납세자들의 반발이 심할 것이고 정부 여당으로서는 선거에서 악재다. 하지만 휴대전화 요금을 정부가 앞장서 낮춰준다면 반대할 국민이 없을 것이다. 반면 불만 대상자는 통신사 3개사밖에 되지 않으니 이보다 더 효율적인 선거용 정책이 있을까 싶다.

한국 못지않게 정부 관료의 입김이 센 일본도 통신비 인하를 선거용으로 활용하기는 마찬가지다. 작년 8월 아베 신조 총리의 오른팔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한 강연에서 “휴대전화 요금을 40% 정도 낮출 여지가 있다”는 발언을 했다. 이에 요미우리신문은 “내년 참의원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요금 인하가 실현될 경우 자민당에 상당한 호재로 작용할 수 있는 기대가 있다”고 분석했다. 아베 총리의 자민당 총재 경선 3선 도전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통신비에 대한 입김은 일본보다 한국이 더 강하다. 일본은 형식적이나마 휴대전화 요금을 자율적으로 정하는 반면에 한국은 선진국들이 가입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유일하게 정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앞으로 어떤 요금제가 나올지 두고 볼 일이다.

오래전 외국 시사잡지에서 읽은 유머다. 한 후보자가 “다른 마을들에는 아름다운 다리가 많은데 우리 마을에만 없습니다. 제가 당선이 되면 근사한 다리를 놓아 드리겠습니다”라고 목청 높여 연설했다. 그러자 앞줄에 있던 청중 한 명이 “감사한 말씀인데, 우리 마을에는 강이 없는데요”라고 하자 당황하지도 않고 그 후보자는 “그렇다면 좋은 강부터 하나 유치하겠습니다”라고 했다는 우스갯소리다.

우스개가 아닌 현실 상황일 수도 있는데 바로 또 하나의 선거철 단골 메뉴인 지방 공항 건설이다. 없는 이용객을 두고 공항부터 짓겠다는 약속이다. 강원 양양 국제공항은 명색이 관광 중심인 강원지역에 국제공항 하나 없다는 명분으로 건립됐다. 지난해 이용객은 3만7000명. 1999년의 수요예측 연 272만 명의 1.4%다. 하루 이용객이 공항 근무자와 비슷한 날이 많다. 무안공항 역시 1999년 사업계획 수립 당시 이용객이 연간 857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수요예측을 앞세워 건립됐으나 작년 이용객은 6.3% 정도인 54만 명에 그쳤다.

이런 선례에도 아랑곳 않고 내년 예산에서 새만금국제공항의 사업착수비 성격으로 기본계획수립비가 40억 원 책정됐다.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이미 예비타당성 조사는 면제받았다. 2028년까지 7912억 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지역의 오랜 민원사업이 해결된 것이다. 양양 무안 등 두 공항은 비록 뻥튀기 수요예측이었지만 그나마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친 사업들이었다.

어느 나라나 정치집단과 그 영향을 받는 정부의 정책이 선거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시기적으로 선거에 앞서 발표되는 정책이 모두 선거용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언제나 정도의 문제다. 통신비 인하나 공항 건설은 파급효과가 워낙 막대한 사안이다. 이제는 낡은 레코드판을 그만 틀었으면 한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통신비 인하#공항 건설#선거용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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