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KB손해보험이 12연패에서 얻은 귀중한 교훈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12월 4일 10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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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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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손해보험이 마침내 기나긴 연패의 사슬에서 벗어났다. 3일 OK저축은행에 세트스코어 3-0 승리를 거두며 개막전 첫 승리 이후 49일 만에 시즌 2승째를 기록했다. 12연패동안 선수단과 구단, 팬들도 모두 힘들었다.

새벽이 오기 전에 가장 깊은 어둠이 찾아온다고 했다. 11월26일 수원 원정에서 한국전력에 11연패 째를 당하며 팀 최다연패 신기록을 세웠을 때가 그랬다. 그 경기 뒤 권순찬 감독은 책임을 지기로 했다.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정했다. 사표를 제출했다.

구단주는 사표를 즉시 반려했다. 권순찬 감독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배구를 할 것이면 여기서 해라”는 구단주의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가 담긴 말은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감독에게 새롭게 도전할 힘을 줬다.

공교롭게도 1년 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한국전력은 개막 이후 16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부진의 이유는 이번 시즌 KB손해보험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큰 기대를 했던 외국인선수가 탈이 났다. 한 경기도 해보지 못하고 돌아갔다. 이번 시즌 산체스의 판박이였다. 부랴부랴 대체 외국인선수를 뽑았다. 아쉽게도 이 과정이 너무 성급했다. 위기일수록 천천히 돌아가면서 문제점을 확실히 파악한 뒤 대책을 찾아야하지만 너무 서둘렀다.

한국전력도 KB손해보험도 선택의 실수를 연달아 하면서 팀은 회복하기 힘든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연패에 빠지면 무엇을 해도 되지 않는다. 경기 운도 따라주지 않는다. 김철수 당시 감독도 연패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로 결심했다. 구단에 뜻을 전했다. 만류했다. 더 참고 해보라는 메시지가 내려왔다. 그래도 팀에 변화가 없자 양복 속에 사표를 품고 다녔다. 감독이 스스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경기가 12월8일 KB손해보험전이었다. 감독의 결심을 알아차린 선수들은 그날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 결과는 세트스코어 3-2 승리였다. 외국인선수 없이 토종들만으로 개막 이후 67일 만에 이긴 선수들은 응원해준 팬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했다.

형편없는 팀이라도 언젠가는 이긴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참고 현장을 믿어주면 결국에는 좋은 날이 오지만 그 과정이 너무 힘들다. 이를 참지 못하고 프런트가 안달복달하고 다른 방법을 찾으면 상황은 더욱 회복불능이 된다.

좁은 배구계에서 소문은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퍼진다. 구단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감독을 신뢰하지 않으면 가장 먼저 선수들이 알아차린다.

아무리 감독이 다그치고 마음을 다잡으려고 해도 선수들 마음속에서 ‘우리 감독이 곧 물러날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면 플레이는 느슨해진다. 사람인 인상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악순환이 반복되면 새로운 누군가가 와도 마찬가지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령탑의 교체로 해결책을 찾으려는 팀은 미래가 없다. 강팀과 약팀의 차이는 선수들의 능력이 결정적이지만 현장을 향한 프런트의 신뢰도 중요하다.

어려운 순간일수록 내부결속이 필요하다. 사람은 자신을 믿어주는 상대를 위해 정성을 다한다. 권순찬 감독도 기나긴 연패에서 벗어나던 날 울림이 있는 말을 했다. “선수들이 의지를 갖고 열심히 하고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내가 모질게 대했다. 왜 안 하느냐고 야단도 쳤다.

조금 더 믿음을 가졌으면 어땠을까”라는 말이었다. 문제해결은 코트에서 뛰는 선수들이 한다.

힘들수록 감독은 선수들을 믿어야한다. 프런트는 그런 감독을 믿고 힘을 줘야 한다.

KB손해보험은 12연패를 했지만 대신 감독을 향한 프런트의 신뢰와 인내가 팀을 단단하게 만든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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