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낸 뒤 무엇을 할까[직장인을 위한 김호의 ‘생존의 방식’]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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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사표 냈어요.” 오랜만에 만난 A는 의외의 소식을 전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물었다.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많이 지쳤고, 일단 쉬고 싶다고 했다. 나 역시 사표를 내고 반년 동안 쉬어 본 사람으로서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직장을 떠나 쉬는 동안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그의 질문에 생각을 나누면서 이야기는 이어졌다. 갈 곳을 정하지 않은 채 사표를 낸다면 불안한 마음이 들 수 있다. 그 역시 사표 낸 것이 과연 잘한 일인지 스스로 묻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한 결정에 대해 후회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익숙함을 떠나 어떻게 새로운 길을 만들어볼지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다음 갈 곳을 정하고 사표 낸 경우에는 그냥 쉬고, 다음 직장에서 어떻게 잘할지 걱정하면 된다. A 같은 경우는 어떨까? 자신의 커리어와 삶을 한 번 심각하게 돌아보면 어떨까. 직장생활에서 나에게 남는 것이 무엇이고, 앞으로 채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나는 그 기간이 3개월이든 6개월이든 A에게 처절하게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동안 바쁘고 지쳤다는 이유로 마주하기 힘들었던 나 자신과 말이다. 어떻게 마주할 수 있을까?

첫째, 현재의 몸과 마음을 챙기는 일이다. 밤에는 푹 자고 낮에는 몸을 많이 움직여보라고 하고 싶다. 좋아하는 지역을 걸어보면 어떨까? 오랜 직장 생활로 많이 지쳤을 것이다. 오랜만에 알람이 아닌 햇빛에 눈을 뜨고 잠을 푹 자기를 바란다. 하지만 집에만 있기보다는 몸을 움직이면서 걷다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내 몸을 찾아가면서 지친 마음도 조금씩 회복될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자 작가인 문요한은 ‘이제 몸을 챙깁니다’에서 마음은 몸에 깃들어 있기 때문에 마음을 챙기려면 몸부터 챙겨야 함을 말한다.

둘째, 과거의 좋은 기억을 살려내는 일이다. 사표를 내고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다. 나는 A가 겪을 수 있는 혼돈이 실은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한 시작이라는 점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앞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뒤를 돌아봐야 한다.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느라 돌아볼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내가 신나서 일했던 경험들을 돌아보자. 수많은 프로젝트를 했을 것이다. 그중에 단지 결과보다는 그 과정을 즐겼던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면 좋겠다. 그리고 왜 그 경험을 즐겼는지를 찾아내다 보면 나의 장점과 직업적 욕망이 무엇인지 아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노트에 지난 직장 생활을 돌아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적다보면 보다 내가 잘 보일 것이다. 1인 기업 기획서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다. 사업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1인 기업 기획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업이 무엇인지, 강점을 어떻게 포지셔닝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 이는 향후 직장을 고르거나 가서 일할 때에도 도움이 된다.

셋째, 미래로 미루기만 했던 경험을 해보라고 하고 싶다. 해보고 싶었지만 막상 하지는 못했던 것이 있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타이밍은 없다. 원한다면 창작 활동을 해보는 것도 좋다. 악기를 배우거나, 글을 써보거나, 아니면 그림을 그리는 것. 이러한 창작 활동의 과정도 자신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A와 이야기를 나누며 오래전 나는 사표를 내고 무엇을 했던가 돌아보았다. 캐나다 핼리팩스란 곳으로 가서 티베트 불교의 가르침과 리더십을 연결하는 캠프에 참여했다. 아침과 저녁에는 참선을 하고, 그 사이에는 관심 있는 주제의 수업을 들었다. 그 밖에 여행을 다니며 많이 걷고 푹 쉬며 앞으로 시작하게 될 사업에 대해 고민하던 시간이었다.

변화(change)와 변환(transition)은 다르다. 사표를 내는 것은 외적인 상황 변화이며 순식간에 벌어진다. 심리적, 내적 변환이 이루어지려면 시간을 두고 나를 살펴보면서 버려야 할 것과 살려야 할 것의 구분을 해야 한다. A가 10년 뒤, 오늘을 돌아보면서 “그때 사표 내고 불안했었지만, 정말 제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출발점이었어요”라고 밝게 말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변화를 변환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나만의 기쁨을 느끼기를.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사표#힐링#정신건강#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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