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범에 맞선 이민자… 영국 反이민 정서에 경종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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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브리지 무슬림테러 2명 사망
폴란드 출신 요리사로 알려져… 고래뿔 들고 칼 든 범인 막아
사살된 범인, 9년전 테러시도 적발… 가석방중 범행… 법절차 논란 가열

범인 칼 치운 시민-현장서 범인 사살하는 경찰 지난달 29일 영국 런던의 런던브리지에서 한 남성이 테러 용의자가 떨어뜨린 흉기를 들고 뒤로 물러서 있다(왼쪽 사진). 이날 무슬림계 남성 우스만 칸(28)이 닥치는 대로 흉기를 휘둘러 2명이 숨지고 3명이 중상을 입었다. 무장 경찰이 칸을 둘러싼 채 진압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칸은 2010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런던증권거래소 폭발 테러 시도에도 연루됐으며 16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지난해 12월 가석방됐다. 런던=AP 뉴시스
범인 칼 치운 시민-현장서 범인 사살하는 경찰 지난달 29일 영국 런던의 런던브리지에서 한 남성이 테러 용의자가 떨어뜨린 흉기를 들고 뒤로 물러서 있다(왼쪽 사진). 이날 무슬림계 남성 우스만 칸(28)이 닥치는 대로 흉기를 휘둘러 2명이 숨지고 3명이 중상을 입었다. 무장 경찰이 칸을 둘러싼 채 진압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칸은 2010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런던증권거래소 폭발 테러 시도에도 연루됐으며 16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지난해 12월 가석방됐다. 런던=AP 뉴시스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영국 런던의 명물 ‘런던브리지’ 북단 초입에 양손에 각각 25cm의 날카로운 칼을 든 28세 무슬림 남성 우스만 칸(사진)이 등장했다. 그는 ‘폭탄이 달린 조끼’도 입고 있었다. 칸은 양손의 칼을 미친 듯 휘두르며 닥치는 대로 주변 사람들을 공격했다. 2명이 숨지고 3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때 용감한 서너 명의 ‘시민 영웅’이 칸과 맞섰다. 특히 폴란드 출신으로 추정되는 우카시 씨의 활약이 컸다. 그는 런던브리지 옆 피시몽거스홀에 전시돼 있던 150cm의 일각고래 뿔을 들고 나와 시민들을 방어했다고 BBC 등이 전했다. 범인은 현장에서 경찰에게 사살됐다.

○ 브렉시트 이후 반이민 정서에 경종


런던경찰청은 아직 우카시 씨의 성(姓), 나이 등 신원을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지 언론은 그가 폴란드어를 구사했고 직업이 요리사라고 했다고 전했다. 특히 그의 용감한 행동이 2016년 6월 브렉시트(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 가결 후 반(反)이민 정서가 고조되고 있는 현실에 준엄한 울림을 줬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한 트위터 사용자는 “어떤 이는 ‘영국에 사는 외국인은 필요없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님을 보여줬다”고 찬사를 보냈다. 파키스탄 이민자 후손인 사디크 칸 런던 시장도 “런던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 다양성”이라고 말했다. 여행 가이드로 일하는 토머스 그레이 씨도 테러범을 보고 즉각 자신의 차에서 내려 칸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2003년 지적장애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제임스 포드(42)도 칸의 진압에 가담했다. 테러 당일 가석방을 받고 칸과 같은 재활 프로그램에 참석한 포드는 칸의 칼부림 공격을 보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목격자들은 포드가 최소 몇 명의 목숨을 구했다고 전했다.

칸은 중부 스태퍼드셔주 스토크온트렌트 출신이다. 19세였던 2010년 12월 공범 8명과 함께 런던 증권거래소 폭탄 테러를 기도하다가 체포된 후 징역 16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칸은 다른 피고인보다 더 심각한 이슬람 성전주의자(지하디스트)”라며 공공의 위협이라고 우려했다. 칸은 8년만 복역하고 지난해 12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달린 전자발찌를 부착하는 조건으로 가석방됐다. 그는 범행 당일 피시몽거스홀에서 열린 출소자 재활 콘퍼런스에 참석 중이었다. 재활 도중 테러를 저지른 셈이다. 숨진 2명 중 1명은 명문 케임브리지대에서 범죄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잭 메릿 씨(25)다. 그는 이날 해당 재활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중 참가자였던 칸의 흉기에 변을 당했다.

○ 가석방 규정 두고 정치 공방 가열


칸이 가석방 기간에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자 정치권의 공방도 거세지고 있다. 12일 조기총선을 앞둔 집권 여당 보수당과 제1야당 노동당은 상대방 비난에 골몰했다. 이베트 쿠퍼 노동당 하원의원은 트위터에 “흉악범이 가석방위원회 심사도 거치지 않고 풀려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나”며 보수당 정권을 비판했다. 프리티 파텔 내무장관도 즉각 트위터에 “과거 노동당 정권이 2008년 도입한 법이 테러범도 형기의 절반만 마친 후 자동으로 풀려나게 했다”고 맞불을 놨다. 두 당은 피해자와 유가족을 추모하기 위해 당분간 선거 유세를 중단하기로 했다.

런던브리지 테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 6월 테러범 3명이 승합차를 몰고 런던 브리지 인도로 돌진해 6명이 사망하고 20명 이상이 다쳤다. 당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배후를 자처했다. IS는 이번 사건 직후에도 “우리 전사가 테러를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런던브리지#무슬림테러#시민 영웅#폴란드 출신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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