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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냄비 두들기는 중남미 시위대 “내 배도 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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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냄비 두들기는 중남미 시위대 “내 배도 비었다”

조유라 기자 입력 2019-11-29 03:00수정 2019-11-29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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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무능에 항의하는 뜻 담겨… 180년 역사지닌 평화적 시위 방식
WSJ “단순해도 체제전복 힘 지녀”… 최근엔 콜롬비아-볼리비아 등 시끌
최루탄 사망 고교생 추모 ‘냄비 시위’ 26일 콜롬비아 보고타 시민들이 전날 사망한 18세 고교생 딜란 크루스를 추모하는 시위를 열고 있다. 크루스는 23일 반정부 시위 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시민들은 항의의 뜻으로 금속제 용기를 식기로 두드리는 ‘카세롤라소’(냄비 시위)를 벌였다. 보고타=AP 뉴시스

볼리비아, 칠레 등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는 중남미 국가에서 시민들이 빈 냄비를 꺼내기 시작했다. 냄비를 활용한 분노 표출이 확산되는 가운데 중남미 통화가치는 연일 약세를 기록해 ‘깡통’이 될 위기에 처했다.

콜롬비아 보고타에서는 25일 시위에 나섰다가 경찰의 최루탄을 맞고 이틀 만에 사망한 18세 고교생 딜란 크루스를 추모하는 시위가 26일 열렸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시민들은 냄비나 프라이팬, 주전자 등 금속 용기를 들고 숟가락, 포크, 국자를 드럼스틱 삼아 리듬을 맞춰 두드리며 행진했다. 콜롬비아에서는 시민들이 연금 및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며 21일 20만7000명이 참여한 총파업을 벌인 뒤로 연일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고 있다.

중남미 시위에서 자주 등장하는 시민들의 ‘냄비 시위’는 ‘카세롤라소(Cacerolazo)’라고 불린다. 이 단어는 스튜냄비를 뜻하는 스페인어 ‘카세롤라(cacerola)’에서 유래했다. 카세롤라소는 ‘텅 빈 냄비나 프라이팬처럼 내 배도 텅 비었다’는 의미로 생활고와 정부의 무능함에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민들이 카세롤라소를 시작하면 정권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뜻한다고 전했다.


카세롤라소는 180여 년의 역사를 가진 평화적인 시위 방식이라고 스페인 통신사 EFE는 설명했다. EFE는 7월 왕정으로 집권한 루이 펠리페 1세의 경제 실정에 항의하며 1832년 시민들이 프라이팬을 들고 거리에 나선 것이 원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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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는 카세롤라소는 간단하지만 체제를 전복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특별한 장비 없이 가정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프라이팬이나 숟가락이면 충분하고, 최루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거리에 나서지 않아도 집에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WSJ는 “에콰도르부터 아르헨티나까지 정권을 끌어내리는 데 카세롤라소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중남미에서 카세롤라소가 본격적인 시위 형태로 등장한 것은 1964년. 주앙 굴라르 당시 브라질 대통령의 좌파 정책에 항의하던 주부들이 냄비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칠레에서는 1980년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 독재 정권에 항의하며 빈 냄비를 두드렸다. 아르헨티나에서는 2001년 페르난도 데라루아 전 대통령이 축출되고, 에콰도르에서는 1997∼2005년에 무려 3명의 대통령이 쫓겨났다.

계속된 시위 등 정치적 혼란 속에 중남미 화폐가치는 계속해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7일 로이터는 칠레 페소가 역대 최저 수준인 달러당 819.75페소로 전날보다 2.74% 급락했다고 보도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26일 라세레나 지역 고급 호텔에 방화한 시위대를 향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올해 중남미 지역 주요 국가 중 멕시코 페소(+0.4%)를 제외한 아르헨티나 페소(―37%), 칠레 페소(―15%), 브라질 헤알(―9%)의 통화가치가 대부분 하락했다. 블룸버그는 “올해 신흥시장 통화 중 중남미가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중남미 국가#냄비 시위#볼리비아#칠레#화폐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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