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확인 안돼”→“23일 포격 파악”… 軍, 北도발 은폐의혹 증폭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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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연평 도발 9주년에 포사격… 국방부, 본보 등 보도 이후에 시인
당초 포격 사실도 北보도 후 공개… 여론 악화 우려에 숨기기 의혹
삼척항 귀순-北선원 추방 겹쳐… 정부 스스로 은폐 의혹 초래 지적
국방부, 26일 北에 항의… 뒷북 논란

국방부가 북한이 서해 접경지역 섬인 창린도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지시로 해안포 사격을 실시한 날짜가 연평도 포격 9주년인 23일이라고 뒤늦게 밝혔다. 9·19 남북 군사합의로 설정된 해상 적대 행위 중지 구역 내에서 북한이 포 사격을 한 사실을 25일 북한 보도가 나온 뒤에야 공개한 데 이어 본보 등이 23일에 사격이 진행된 사실을 보도한 뒤 그 날짜를 공개해 ‘릴레이 은폐’ 논란이 일고 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26일 브리핑에서 포사격 시점을 묻는 질문에 “23일 오전 파악됐다”고 밝혔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도 “우리 군은 23일 오전 창린도 일대에서 음원을 포착했다”고 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국방부는 이번 사격을 두고 “9·19 군사합의 위반”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언제 사격이 이뤄졌냐”는 질문엔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대북 정보 사안이라 보안상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군 관계자들도 전날 “사격 날짜가 일부 고위 당국자에게만 공유돼 좀처럼 확인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 하루 만에 포사격 일자가 23일이라고 확인한 것이다.

군 관계자는 “북한 보도와 뒤이은 한국 언론 보도로 더 이상 포격 사실을 숨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하나씩 공개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포사격 날짜를 일부 언론이 보도하지 않았다면 국방부가 이를 공개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북한이 연평도 포격 9주년에 맞춰 김 위원장 육성 지시에 따라 연평도 포격을 재현한 듯한 대남 적대 행위를 한 사실이 알려질 경우 대북 여론이 악화될 것을 우려해 날짜를 함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북한은 25일 사격 사실을 공개하면서도 김 위원장의 시찰 및 사격 날짜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 같은 논란에 합참 관계자는 26일 “23일 창린도에서 미상 음원을 청취하고 그 실체를 분석하던 중 북한이 사격을 했다고 보도했다”며 “수집된 첩보와 북한이 공개한 정보를 더해 해안포 사격으로 평가하고 날짜를 공개한 것으로 은폐한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과 관련한 민감한 이슈에 대해 정부가 앞서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알려진 다음 마지못해 공개하는 식으로 은폐 의혹을 자초해온 것을 되풀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앞서 살인 사건에 연루된 북한 주민 2명을 강제 추방한 7일에도 관련 내용이 담긴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1차장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언론을 통해 공개된 뒤 이 같은 사실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초청하는 친서를 전달하고 김 위원장을 대신할 특사 파견을 요청한 사실도 북한이 21일 이 같은 사실을 매체를 통해 밝히면서 뒤늦게 공개됐다. 여기에 6월 ‘삼척항 해상 노크 귀순 사건’ 은폐 의혹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국방부의 ‘뒷북 대응’도 논란이 됐다. 국방부는 이날 북한의 해안포 사격과 관련해 서해지구 군통신선을 통해 구두 항의하고 항의문을 보낸 사실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미 포사격이 진행된 지 사흘이 지난 대응이어서 여론을 의식한 뒤늦은 조치라는 지적이 나왔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의 사격은 군사합의를 대놓고 위반해도 한국이 별다른 대응을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계산한 행보”라며 “이번 일로 합의가 확실하게 깨진 만큼 우리도 북한이 한 행위에 비례한 군사적 대응 훈련으로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청와대는 26일까지 북한의 포사격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 외교안보라인이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열린 부산으로 총출동한 만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열리지 않았다. 청와대는 그동안 북한의 대남 타격용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남북 군사합의 위반은 아니다”라며 군사합의를 통한 접경지역 긴장 완화를 남북 대화의 최대 성과 중 하나로 강조해왔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문병기 기자
#북한 해안포 사격#국방부#연평도 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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