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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쑤, 좋다구나!” 쪽 찐 머리에 구성진 판소리… ‘전통 케이팝’에 빠진 외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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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쑤, 좋다구나!” 쪽 찐 머리에 구성진 판소리… ‘전통 케이팝’에 빠진 외국인들

임희윤 기자 입력 2019-11-26 03:00수정 2019-11-26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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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외국인국악아카데미’
24일 저녁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외국인국악아카데미 수료 기념 판소리 합동 공연. 국립극장 제공
“아버지, 듣조시오. (중략) 다 큰 자식 집에 두고 아버지가 밥을 빌면, 남이 욕도 할 것이요. 바람 불고 날 추운데 행여 병이 날까 염려오니….”

24일 저녁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 무대. 미국인 어맨다 콩키 씨(27)의 걸쭉한 창에 숨죽인 관객들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가 애달프게 뽑아낸 것은 판소리 ‘심청가’ 중 ‘아버지 듣조시오’ 대목. 한국어 발음은 조금 어설펐지만 벽안에 쪽 찐 머리를 하고 부채를 든 콩키 씨는 그 순간 일곱 살 심청이가 됐다. ‘나도 이제 다 컸으니 아버지 대신 밥 동냥을 나가겠다’며 애끓는 소리를 토로했다.

콩키 씨의 무대는 2019년 가을겨울 외국인국악아카데미 수료 공연 ‘얼-쑤, 좋다구나!’의 일부였다. 9월부터 11월까지 12주간 17개국 45명이 판소리와 사물놀이, 한국무용반으로 나뉘어 수업을 들었다. 독일 루마니아 미국 과테말라 불가리아 싱가포르 등 국적도 다양하다.

외국인국악아카데미는 주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 전통예술 체험 강의. 국립극장이 2013년 시작해 현재까지 총 649명이 아카데미를 찾았다. 한국어가 서툴러도, 전통예술을 처음 접해도 따라올 수 있도록 실기 위주로 수업한다.


공연장에서 만난 수료생들은 “케이팝도 좋지만 한국 전통 예술의 매력은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라고 입을 모았다. 사물놀이반의 스탄 라우라 플로리나 씨(27)는 2009년 고국 루마니아 국영 TV에서 드라마 ‘다모’를 보고 한국식 사극과 배우 하지원에게 빠졌다. 2014년 현지 한국대사관 축제에서 사물놀이 공연을 처음 봤다. 홀딱 반해 버렸다. 플로리나 씨는 “그 뒤 루마니아 현지에서 6인조 사물놀이 팀 ‘푸른 나래’를 조직해 활동했다. 인터넷 동영상을 보며 우리끼리 연구했다”고 했다. 그는 다니던 IT 회사마저 그만두고 급기야 한국외국어대에 유학해 한국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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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 만난 수료생들. 왼쪽부터 스탄 라우라 플로리나, 아나이스 가브리엘라 파우레 데파스, 마쓰카와 미키 씨. 국립극장 제공
한국무용반의 아나이스 가브리엘라 파우레 데파스 씨(28)는 과테말라에서 왔다. 어릴 때는 플라멩코를, 커서는 탱고를 익혔다. 한국인 친구들을 통해 문화를 접하다 한국 무용에 ‘접신’했다. 데파스 씨는 “탱고의 매력이 관능적인 2인무라면 한국무용은 ‘새처럼’ ‘나무처럼’ 등 자연을 은유한 동작들”이라며 “느리게 흐르다 빠르게 뻗으며 속도와 균형을 계속해 제어하는 부분이 큰 재미”라고 했다.

판소리반의 일본인 마쓰카와 미키 씨(49)는 “사물놀이를 배우다 관심이 판소리로 옮아왔다. 춘향가 중 사랑가의 밝은 정서, 심청가 중 상여소리의 한(恨), 모두 사랑한다”고 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사극의 열혈 팬이다. 플로리나 씨는 “풍습을 보는 재미에 쉬는 날엔 서울 시내 박물관 투어를 할 정도”라고, 마쓰카와 씨는 “명성황후 시해 등 일본에서는 배우지 못한 역사를 알게 됐다”고 했다.

수료생들의 사물놀이와 한국무용 공연. 국립극장 제공
다양한 외국인이 어우러지니 에피소드도 많다. 사물놀이반 강사 연제호 씨는 “‘장구를 왜 꼭 이렇게 생긴 채로 쳐야 하나’ 등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쏟아져 진땀도 뺀다. 대단한 열정에 저 역시 많이 배웠다”고 했다. 그는 수업 때 ‘보디랭귀지’를 30% 정도 쓰고, 나머지는 한국어와 영어를 반반씩 써 가르친다고 했다. 매 학기 수료 공연이 끝나면 눈물을 흘리며 얼싸안고 석별의 정을 나눈다. 그의 가슴이 늘 뻐근해지는 시간이다.

아카데미 강좌는 내년에도 이어진다. 수강료는 3만 원. 등록 방법과 일정은 연초에 공개한다. 홈페이지 참조.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국립극장#외국인국악아카데미#국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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