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괜찮다[2030 세상/김지영]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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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원스토어 웹소설 PD
김지영 원스토어 웹소설 PD
“야, 시간 미쳤어(순화하면 ‘시간이 미친 듯 빨리 간다’, 의역하면 ‘너무 오랜만에 본다’)!” 옛 친구들을 만나면 인사치레처럼 주고받는 말이다. ‘먹고사니즘’이 녹록지 않다 보니 아무리 자주 보자 다짐해도 1년에 한두 번이 고작이다. 며칠 전에도 못 본 지 한참 된 친구와 약속을 잡으려 일정을 확인하는데, 달력을 넘기다 그만 화들짝 놀랐다. 왜 뒷장이 없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다음 주가 12월이란다. 새해를 빌미로 거창한 인생 계획을 그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올해는 유독 빨리 간 느낌이다. 실감이 안 나는 나머지 시간을 도둑맞은 느낌마저 든다. 이쯤 되면 모두가 되짚어 보는 질문, ‘나 뭐 했지?’ 그나마 틈틈이 다이어리를 쓰는 기록형 인간이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애꿎은 지난 달력을 넘겨보며 잃어버린 시간의 증빙을 찾는다. 빽빽한 스케줄을 보면 제법 열심히 살았던 것 같긴 한데, 왜 2019년 다이어리 첫 장에 적어놓은 올해의 목표는 여전히 내년의 목표로도 유효한 걸까.

선조들의 말마따나 정말 시간이 ‘쏜 살’같다. 생각해보면 작년에도 또 재작년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긴 한데, 어쩐지 해를 거듭할수록 그 느낌이 더 선연하다. 흔히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점점 더 빨리 간다고들 한다. 보통은 그 이유가 어릴 때만큼 새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데, 뭐든 시작하기를 좋아하는 성격 탓에 일상에 새로울 게 넘쳐나는 나로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진단이 아닐 수 없다. 해를 거듭할수록, 역할이 늘수록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지니 가는 시간이 아쉬워서가 아닐까 막연히 추측할 뿐. 아직 출산 퀘스트를 완수하지 못한 기혼이기에 더욱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주로 ‘노오력’을 채찍질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말이긴 하지만 ‘20대의 하루는 30대의 일주일, 40대의 한 달과 같다’는 말이 불현듯 머리를 스친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1 대 7 대 30인 셈인데, 그렇다면 30대인 나의 하루는 40대의 4.3일(30 나누기 7은 약 4.3이므로)과 같은 것인가, 시답잖은 계산을 하며 제 몫을 다하지 못한 하루를 자조한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하루가 4.3일과 같은 효용을 지니게 되는 걸까. 얼마나 더 치열해야 나의 이른 30대는, 나의 청춘은, 후회 없던 시절로 기억될 수 있을까.

12월 빼곡히 연말 약속을 잡으면서 주말 하나를 비워본다. 서른하나의 나를 보내주기 위한 ‘셀프 송년회’를 가질 심산이다. 나이를 먹는 것 자체에는 큰 감흥이 없지만 이 시기―어느 정도 경제적 시간적 자유를 지닌 30대 초반, 무(無)자녀―의 내가 지나가는 것은 못내 아깝다. 가는 시간을 잡을 수는 없으니 그저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잘하고 있다 대신 잘하지 않아도 된다고, 다 잘될 것이다 대신 잘되지 않아도 나는 괜찮을 것이라고. 내 마음의 주인이 나인 이상 우리, 다 괜찮다.
 
김지영 원스토어 웹소설 PD
#먹고사니즘#연말#송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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