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네스티 “이란 휘발유 값 인상 항의 시위로 100명 이상 사망”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0일 15시 46분


코멘트
이란 정부가 L당 휘발유 가격을 약 50원 인상하면서 촉발된 반(反)정부 시위로 지금까지 이란에서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인권단체인 국제엠네스티가 19일 밝혔다.

이 단체는 성명을 통해 “믿을 수 있는 보고에 따르면 이란 내 21개 도시에서 최소 106명의 시위 참가자가 사망했다”며 “실제 사망자 수는 훨씬 더 많을 수 있다”며 “200명 이상 사망했다는 보고도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16일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뒤 지금까지 참가자 중 12명만 사망했다는 이란 측 설명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또 실제 이란 내 상황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란은 현재 인터넷을 차단시키는 등 내부 통제에 적극 나서고 있어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국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17일 연설을 통해 이번 시위를 폭동이라고 비판했고, 다음날 이란에서 ‘정부 위의 정부’로 불리는 혁명수비대(IRGC)가 “시위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해 평소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예측이 많았다. 실제로 엠네스티는 동영상 입수와 목격자 증언을 토대로 “이란 전역의 100여개 도시에서 전반적으로 평화롭게 진행되는 시위를 이란 보안군이 과도하고 치명적인 무력을 사용해 진압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란 내 반정부 시위는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란 당국이 시위 주도 및 폭력 행위 등을 이유로 1000명 이상을 체포하고, 군경 인력을 주요 장소에 대거 배치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란은 18일 경제력이 떨어지는 1800만 가구(약 6000만 명)를 대상으로 생계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하는 등 유화책 마련에도 나서고 있다. 이란 정부가 발표한 생계 보조금은 4인 가족 기준 월 172만 리알(약 1만7000원), 5인 가족 205만 리알(2만 원)이다. 이에 따라 조만간 다시 반정부 시위에 불이 붙는 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한편 이란은 국내 시위뿐 아니라 이라크와 레바논 같은 주변 국가에서 발생하는 시위로도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란의 정치·안보 영향력이 강한 이 나라들에선 최근 시위대가 ‘이란은 철수하라’, ‘정부는 이란에 의존하지 말라’는 구호를 외치는 경우가 많아졌다. 자국의 경제난과 정치 불안의 원인이 이란의 개입에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이라크에선 최근 이란과 긴밀히 협력했거나 지원을 받은 정치인과 정부 관계자들의 명단도 공개돼 더욱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란은 지난 10여년 간 시아파 인구 비율이 높고 정세가 불안한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에서 다양한 정치·군사 활동을 펼치며 영향력을 키워왔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제재가 지속되고, 동시에 이 나라들에서 반이란 정서도 강해지면 지금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선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이란이 이라크와 레바논 등에서 활동하는 친이란 성향 무장정파들에게 더욱 강경한 대응을 지시하고, 이로 인해 내부 갈등과 인명피해가 커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