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 된 악기도 연주자의 ‘마사지’를 받아야 名品이 됩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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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고악기 복원전문가 英 플로리안 레온하르트

세계적인 고악기 전문가인 플로리안 레온하르트가 14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를 찾았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1724년 이탈리아 장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바이올린 ‘에든버러 공작’. 악기 끝에 줄을 고정하는 테일피스에는 영국 왕실 문양이 선명하고, 줄을 세우는 브리지(작은 사진)에는 복원작업을 한 레온하르트의 이니셜이 적혀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세계적인 고악기 전문가인 플로리안 레온하르트가 14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를 찾았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1724년 이탈리아 장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바이올린 ‘에든버러 공작’. 악기 끝에 줄을 고정하는 테일피스에는 영국 왕실 문양이 선명하고, 줄을 세우는 브리지(작은 사진)에는 복원작업을 한 레온하르트의 이니셜이 적혀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바이올린은 흔히 300∼400년 전에 이탈리아 북부 크레모나 지역에서 제작한 장인들의 악기를 최고로 꼽는다. 그중에서도 특히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 델 제수는 명품 악기의 대명사로 통한다.

이탈리아 명품 고(古)악기 복원 및 제작, 감정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인 플로리안 레온하르트(56)가 14일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영국 왕실이 소유했던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 ‘에든버러 공작(The Duke of Edinburgh)’과 1727년산 과르네리 델 제수 등 고악기 4대도 들고 왔다. 개당 최소 1000만 달러(약 116억 원) 이상 가치를 지닌 명품이다.

영국 런던에 이는 고악기 복원 및 제조공방에서 30년 넘게 일해왔으며 '플로리안 레온하르드 화인 바이올린'사 대표인 그는 고악기 전문 딜러이자 감정 분야 권위자다. 그는 막심 벤게로프,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니콜라 베네데티 같은 유명 바이올리니스트는 물론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베를린 필하모닉, 금호문화재단 등 음악 관련 단체의 악기 구입을 조언해 왔다. 그는 이번에도 한국과 중국, 일본 컬렉터들에게 조언해주기 위해 아시아를 방문했다.

―‘에든버러 공작’은 어떤 악기인가.

영국 런던에 있는 바이올린 공방에서 복원작업을 하고 있는 플로리안 레온하르트. Florian Leonhard Fine violins 제공
영국 런던에 있는 바이올린 공방에서 복원작업을 하고 있는 플로리안 레온하르트. Florian Leonhard Fine violins 제공
“스트라디바리가 1724년에 한 독일 백작의 주문으로 만든 바이올린이다. 이후 영국 왕실에 팔렸고, 1880년대 빅토리아 여왕이 아들인 알프레드 왕자(에든버러 공작)에게 줬다. ‘로열 피들러’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알프레드 왕자는 영국 해군 제독으로 근무할 때 선상이나 콘서트홀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이 신문에 자주 실렸다.”

이후 이 바이올린은 미국으로 팔려나가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기증됐다. 그런데 프리츠 크라이슬러, 외젠 이자이, 미샤 엘먼, 야샤 하이페츠 등 당시 유명 연주자들이 반기를 들었다. “위대한 악기가 있어야 할 곳은 박물관이 아니라 콘서트장”이란 주장이었다. 법적 소송 끝에 박물관은 소유권을 포기했고, 이후 이 바이올린은 연주 악기로 활용돼왔다.

―왜 명품 고악기는 박물관에 있어선 안 되는가.

“지난 200∼300년 동안 세계 최고 연주자들이 사운드를 체크하면서 최고가 될 때까지 수정하고, 튜닝해온 악기는 소리가 좋을 수밖에 없다. 바이올린은 더 많이 사용할수록 나무의 떨림을 통한 파동의 진폭이 좋아진다. 연주자가 모든 부분을 만져주고, 눌러주고, 마사지해줄 때 바이올린은 좋은 바이브레이션에 대한 메모리를 만들어낸다.”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 델 제수의 소리는 어떻게 다른가.

“스트라디바디는 아름답고 화려한 외형에 따뜻하고, 깊이 있고, 다채로운 컬러의 사운드를 들려준다. 과르네리 델 제수는 마치 사자가 포효하듯이 강력한 파워를 뿜어내기 때문에 개성 있는 연주자들이 선호한다. 반면 스트라디바리는 훨씬 더 예민해서 살살 달래가며 조심스럽게 연주해야 한다. F1 레이싱카를 운전하는 드라이버처럼 최상의 숙련도가 필요하다. 만일 재능 없는 운전자가 F1 카를 몬다면 빙글 돌다가 벽에 충돌하고 말 것이다.”

―세계적으로 고악기 시장의 규모는….

“연간 40억 달러(약 4조6740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 현재 100만 달러 이상의 가치를 가진 고악기는 3000개 정도만 남아 있다. 희소성 때문에 가치는 계속 오른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주식시장은 폭락해도 스트라디바리 가격은 10% 이상 올랐다. 물론 가짜도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 100만 달러 이상 바이올린 가운데 10분의 1은 가짜로 봐야 한다.”

아버지는 화가였고, 어머니는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그는 22세 때부터 런던의 바이올린 복원 공방에서 일했다. 이후 30여 년간 이탈리아 고악기를 복원하고, 제작하고, 책도 펴냈다. 세계적인 고악기 감정 전문가로도 활동하는 그에게는 ‘셜록 홈스’라는 별명도 따라다닌다.

“가짜 바이올린을 밝혀내는 일은 홈스가 범죄 현장에서 수사하는 것과 똑같아요. 돋보기로 들여다보며 핏자국을 조사하고, 알리바이를 검증하듯이 바이올린을 보면서 증거를 찾습니다. 바이올린을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스캔해서 목재의 세포까지 검사하고, 접착제와 안료까지 정밀 조사하죠. 이러한 흔적과 디테일을 조사하면서 모든 가능성을 탐색하고, 배제해 나갑니다. 마침내 하나의 결론에 이르죠.”

2003년 이후 한국을 자주 찾은 그는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바이올린 전시회에서 15세 연주자가 명품 악기를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던지 깜짝 놀랐다”며 “글로벌 음악재단에서 악기를 구입해 젊은 연주자에게 대여하는 사업이 더욱 확대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플로리안 레온하르트#명품 고악기 복원전문가#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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