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프로듀스×101’의 배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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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 두 명이 마주 보는 밀폐된 부스 안에서 퀴즈로 우열을 가립니다. 부스 안에서는 경쟁자에게 주어지는 질문이나 정답이 들리지 않습니다. 사회자는 1점에서 12점까지의 난이도별 문제를 무작위로 뽑아 각 참가자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오직 자신에게 들려오는 문제만 듣고 정답을 맞혀 21점에 먼저 도달하는 사람이 이깁니다. 한때 미국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했던 NBC 방송국의 프로그램 ‘Twenty One’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 프로그램의 방송사와 출연자가 공모해 승부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시청자들은 큰 충격에 빠집니다. 미국의 로버트 레드퍼드 감독은 ‘Twenty One’ 사건을 영화 ‘퀴즈쇼’(1995년)로 재현해 미디어 콘텐츠를 조작하는 문제를 고발합니다. 질문지를 은행 금고에서 가져오는 것으로 설정하는 등 공정성으로 가장했던 위선이 만천하에 드러난 겁니다. 감독은 퀴즈쇼의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철저히 계산된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연출했습니다. 퀴즈쇼는 광고주와 방송사의 이익을 위해 대중을 속였고 출연자마저 돈과 명예를 미끼로 꼬드겼습니다.

엠넷(Mnet)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101’이 대중을 기만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시청자들은 자신이 직접 아이돌 스타를 만들어낸다는 해당 프로그램 기획에 열광했습니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방송사는 조직적으로 투표율을 조작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경찰은 제작진과 기획사 관계자들을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2016∼2017년에 방영된 프로듀스 시리즈의 시즌1과 2에서도 조작 정황이 포착됐다고 합니다. 시즌1과 2에서 배출돼 현재 인기 스타로 성장한 ‘아이오아이’와 ‘워너원’에까지 파장이 미치는 사안이라 팬들의 상실감은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지던 프로듀스 시리즈가 졸지에 방송국과 모기업을 위태롭게 하는 골칫거리가 됐습니다. 그간 방송사는 아이돌 후보가 될 연습생의 경연을 통해 광고 이익을 얻었습니다. 연예 기획사와 음반사는 앨범 판매와 공연 등으로 매출을 높였죠. 이러한 수익 구조에 중대한 문제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지난 10여 년간 수많은 스타를 배출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대형 기획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가요계의 판도를 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누구나 실력으로 스타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거죠. 노래 경연 프로그램들이 각광받았던 이유는 ‘계급장 떼고’ 오로지 실력으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신뢰를 저버린 방송사와 모기업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일벌백계의 엄정함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노래 경연 프로그램이 음악의 다양화와 케이팝 시장의 확대에 기여한 공은 간과하기 어렵습니다.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감독기구 설치 등 다각적인 방안을 마련해 오디션 프로그램의 순기능을 살릴 필요가 있습니다.

뉴미디어 시대에 대중은 더 이상 수동적 존재가 아닙니다. 쌍방향으로 소통을 하며 방송의 향방을 결정하는 주체로 우뚝 선 지 오랩니다. 이번 ‘프로듀스×101’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것도 깨어 있는 대중의 예리한 문제 제기에서 비롯됐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방송사가 환골탈태(換骨奪胎)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프로듀스×101#엠넷#프로듀스 시리즈#투표 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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