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월 매출이 4000만 원? 경주 핫플레이스된 이 곳의 비결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8일 17시 43분


코멘트
“경주의 교보문고 같다니까요.”

한 출판사 대표가 경북 경주시에 월 매출 4000만 원을 내는 독립서점이 있다고 했다. 지방 소도시의 서점, 그것도 참고서는 일절 취급하지 않는 독립서점의 매출치고는 비현실적이었다.

11일 경주시 포석로의 ‘어서어서’ 서점을 찾았다. 평일 낮인데도 30㎡(약 9평) 넓이의 서점은 바삐 돌아갔다. 평균 15명 정도가 꾸준히 서점에 머물렀다. 양상규 사장(35)은 “평일이라 숨 돌릴 만하다. 매출은 하루 평균 평일은 100만 원, 주말은 300만~500만 원 정도”라고 했다.

서점이 자리한 곳은 황리단길이다. 경주의 핫플레이스이자 관광 필수 코스다. “높은 매출은 황리단길 덕분”이라는 눈초리도 있다. 하지만 방문객 수가 매출로 곧장 이어지는 건 아니다.

“후광효과는 30~40% 정도인 것 같아요. 우선 서점은 황리단길이 활성화되기 전인 2017년 6월에 문을 열었어요. 인근에 서점이 ‘어서어서’만 있는 것도 아니랍니다.”

어서어서는 어른들의 놀이터 같았다. 나무 결을 훤히 드러낸 오르간, ‘철수와 영이’가 찍힌 교과서, 꾸깃꾸깃한 사전…. 추억의 잡동사니들이 책만큼 꽉 차 있다. 그 가운데 누런 봉투가 눈에 띄었다.

“이름을 적은 약 봉투에 책을 담아드려요. 책은 ‘읽는 약’이니까요. 이 봉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유명세를 타면서 ‘경주 방문=어서어서의 책 봉투’라는 공식이 생긴 것 같아요. 인증 시대에 딱 맞는 아이템이자 매출의 1등공신인 셈이죠.”

도장 찍기 공간도 인기가 뜨겁다. 책을 사면 종이 책갈피를 나눠준다. 여기에 알파벳, 한글 자모, 그림 문양의 도장을 찍어 꾸민다. 서점을 방문한 30대 신재연 씨는 “모르는 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도장을 찍으니 대학 시절 동아리방에 온 것 같다”고 했다. 서울에 사는 30대 김유경 씨는 “경주에 다녀온 지인이 작은 박물관 같은 서점이 있다고 해서 들렀다. 책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오르간을 치다보니 훌쩍 40분이 지났다”고 했다.

독립서점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책 큐레이션은 어떨까. 이곳은 문학서점을 표방하지만 모든 장르를 두루 취급한다. 입고 기준은 양 사장의 ‘완독 여부’. 모든 공간은 시각적 개성에 힘을 줘 구성했다고 한다.

“시집은 출간일이나 출판사가 아닌 색깔별로 분류해 배치했어요. 사진 찍는 공간도 곳곳이 뒀고요. 눈길을 잡아끌어야 책으로 손이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점에서 잘 팔리는 책 1~5위는 모두 에세이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마음의숲),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허밍버드),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강한별), ‘진짜 모습을 보이면 더는 사랑받지 못할까봐 두려운 나에게’(허밍버드),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부크럼) 순이다.

평소 독서를 즐겨 하는 방문객은 열에 하나 정도. 나머지 아홉은 일반 관광객으로 제목이 “내 이야기다” 싶은 책을 집어 든다. 부산에서 온 김혜린 씨(25)는 “이곳은 SNS에서 빈티지 숍 같은 인테리어와 좋은 책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제목에 이끌려 시집 ‘너를 모르는 너에게’를 골라봤다”고 했다. 그래서 이곳에서 팔리는 책 중엔 베스트셀러가 없다. 장르소설에 흥미를 느껴 늦깎이 책벌레가 됐다는 양 사장은 “책에 대한 편견은 없다. 시작이 반인만큼 독서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학 졸업 뒤 사진관, 은행 등을 거쳐 2013년 고향인 경주에 식당을 차렸다. 서점 창업에 필요한 종자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식당이 자리를 잡자 인근에 저렴한 월세를 구해 서점을 열었다. 점심·저녁에는 식당, 남는 시간에는 책방을 오가며 반 년 간 두 집 살림을 했다.

“관광지 외엔 즐길 거리가 없어서 그런지 서점 매출이 예상 외로 괜찮았어요. 30만 원, 50만 원, 100만 원…. 배보다 배꼽이 커지면서 오랜 꿈인 서점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독립서점에 매출의 잣대를 들이대야 하느냐는 시각도 있다. 책에 대한 사랑으로 서점을 어렵게 꾸려가는 이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는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운 서점은 나의 분신이다. 이윤이 가장 큰 목적은 아니다. 하지만 독립서점이라고 잘 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을까”라고 했다. 책을 계산할 때 보통 바코드를 찍어 가격을 말해주지만, 여기선 양 사장의 머리 속에서 나온다.

“책 가격을 모두 외워요. 기계를 사용하면 아날로그적 감성이 훼손될 것 같아서요. 온라인 서점에는 없는 비기(秘器)를 습관처럼 연구합니다.”

경주=이설 기자 snow@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