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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능력주의 외치는 ‘新엘리트’, 불평등의 새로운 판을 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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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능력주의 외치는 ‘新엘리트’, 불평등의 새로운 판을 깔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입력 2019-11-16 03:00수정 2019-11-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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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PRIVILEGE)/셰이머스 라만 칸 지음·강예은 옮김/419쪽·2만 원·후마니타스
미국 뉴햄프셔주 콩코드에 있는 명문 사립고 세인트폴 스쿨은 오랫동안 부유층 자제들만이 다니는 배타적 영역이었다. 500명 남짓한 학생들은 1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100개 이상의 고딕양식 건물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는다. 사회학자인 저자는 이 학교 졸업 뒤 9년 만에 새로운 엘리트층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해 다시 세인트폴 교사로 돌아온다. 후마니타스 제공
요즘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공정’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특권계층의 반칙 행위에 대한 시선이 어느 때보다 날카롭다. 정치권과 상류층에서 무심코 튀어나오는 특권의식에 찬 민감한 발언은 수많은 청년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 책은 미국 사회 엘리트 계층의 구조 변동을 다룬 컬럼비아대 사회학과 교수의 역작이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 엘리트의 성격은 변화하고 있다. 구(舊)엘리트들이 높은 울타리를 치고 자기들끼리만 폐쇄적으로 특권의식을 나눴다면, 신(新)엘리트들은 기회의 평등과 능력주의를 신봉한다. 이들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밤새 노력해 꽃피운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통해 성취한 것만이 공정하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특권의식과는 다른, 신엘리트들의 ‘특권(Privilege)’이다.

신엘리트들이야말로 누구보다 더 구엘리트들의 특권의식에 반대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이다. 자기들이 실험실에서 밤잠을 설치며 갖은 노력 끝에 써낸 논문 한 편으로 올라온 사다리를 특권의식을 가진 구엘리트들은 그들만의 폐쇄적인 네트워크와 자원을 동원해 손쉽게 한번에 올라가 버리기 때문이다. 신엘리트들에게 자신들의 특권은 ‘고난과 역경’의 산물이지만, 구엘리트들은 ‘특권의식’에 의한 반칙이기에 이들은 하층보다 구엘리트들을 더 경멸하고 분노한다.



그렇다면 신엘리트들의 ‘특권’은 구엘리트보다 과연 더 공정할 것인가? 저자는 이러한 질문을 품고 미국 사회 최고 엘리트의 산실인 명문 기숙사립학교 세인트폴 스쿨에서 1년간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과 교사들을 관찰한다. 연구 결과는 비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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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햄프셔주 콩코드에 위치한 세인트폴 스쿨의 연간 학비는 4만 달러(약 4680만 원), 학생 1인당 책정된 학교 예산은 8만 달러로 부유층이 다니는 학교다. 이 학교 졸업생이기도 한 저자는 학교의 인종·계급적 다양성이 증가했지만, 부의 세습은 더욱 심화됐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학교의 신엘리트들은 오페라와 랩 음악을 동시에 즐기고,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기사식당에서도 편하게 어울린다. 위아래 계층과 편안하게 소통하는 이러한 능력은 단순히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비싼’ 경험을 통해 몸 자체에 체화돼야 한다.

저자는 세인트폴 스쿨이 ‘다른 학교가 분노할 만큼’ 높은 아이비리그 합격률을 유지하는 비결도 폭로한다. 이 학교는 엄청난 재원을 통해 모든 학생들을 어느 분야에서든 톱으로 만들어낸다. 단 500명의 학생들에게 주어진 수백 개의 동아리들과 수많은 교과목들은 거의 무수한 선택지를 제공하며, 모든 학생이 어느 한 곳에서는 최고가 될 수 있도록 조직돼 있다. 뭣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아이비리그 대학들과의 오랜 연줄. 학교 입시 담당자들은 입학 시즌이면 “열심히 전화를 돌린다”. 이처럼 모두를 우등생으로 만들어 낸 뒤 각 대학의 구미에 맞는 애들을 짝짓기 하는 것이 그들의 비결이다.

이 책은 학생들의 기숙사 신고식, 수업시간의 풍경 등을 생생히 담아 소설책처럼 흥미롭게 읽힌다. 그러나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기회와 과정은 공정해졌다고 하는데, 왜 사회이동은 더욱 줄고 불평등은 심화될까. 신엘리트들은 “능력 때문이지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이 아니야. 너희의 실패는 너희가 이런 사회의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불평등은 더 이상 성, 인종, 계급과 같은 집단이 아니라 개인 능력의 문제로 치부된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민주적 불평등’이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특권#셰이머스 라만 칸#세인트폴 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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