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업 경영진 해임 요구권까지 갖겠다는 국민연금의 월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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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는 어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 행사 요건과 관련한 공청회에서 횡령, 배임, 공정거래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상장기업 이사에 대해 해임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어제 제시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법령상 위반 우려로 기업가치가 훼손됐거나, 국민연금이 이사 선임 건에 대해 반대의결권을 지속적으로 행사한 기업은 스튜어드십 코드 대상에 포함된다.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기업 의결권 참여의 길을 연 데 이어 이제 본격 권한 행사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특히 복지부는 법령상 위반 우려의 기준을 ‘국가기관의 1차 조사 결과 혐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라고 규정했는데 이는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 국세청이나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검찰에 고발만 해도 해당 기업의 경영진은 해임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현장에선 경영진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다툼의 여지가 큰 배임 등에 연루될 수도 있는데 그때마다 경영진이 해임을 요구받는다면 기업의 명운을 건 전략적 투자나 효율적 경영은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적연금이 주식의결권을 갖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7개국 가운데 대통령이 임명하는 장관이 공적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 수장을 맡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정부가 마음먹고 언제든지 기업 경영에 간섭할 수 있게 되면 기업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정부와 코드를 맞추려 할 것이다.

국민연금은 630조 원을 굴리면서 국내 증시에 130조 원 가까이 투자한다.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만도 300개에 가깝다. 국민 대다수가 노후에 기댈 대표적 생계수단인 국민연금은 전문적인 자금 운용이 최우선 목표가 되어야 한다.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기업을 혼내는 용도가 되어선 안 된다. 국민연금이 모호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기업 경영에 간섭할 권한만 늘리려 한다면 이것이 바로 연금사회주의나 다름없는 행태다.
#보건복지부#국민연금#스튜어드십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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