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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 김병기 감독 “12년 추적의 기록, 더 이상의 삽질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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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 김병기 감독 “12년 추적의 기록, 더 이상의 삽질은 그만”

이해리 기자 입력 2019-11-14 08:00수정 2019-11-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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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을 연출한 김병기 감독. 2006년 시작해 12년간 이은 추적의 기록을 통해 4대강 사업의 실체를 관객에 전한다. 사진제공|오마이뉴스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하지 않으면 책임을 물을 수 없어요.”

어떤 ‘기억’은 공분을 자아낸다. 미처 몰랐던 진실이 뒤늦게 드러나 기억의 조각이 새롭게 맞춰질 때 그렇다. 이에 권력의 비리와 부정까지 밝혀진다면 공분을 넘어 분노가 차오른다. 14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을 보고 있으면 드는 감정이다.

‘삽질’은 지금도 매년 수천억원의 세금이 관리비 명목으로 투입되는 4대강 사업의 실체를 파헤치는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이를 탄생시킨 주인공은 연출자인 김병기(54) 감독. 2006년부터 무려 12년 동안 생태계가 무너지는 4대강 공사 현장을 직접 찾아 빠짐없이 기록하고, 참혹한 파괴를 유발한 장본인들을 찾아가 ‘왜 그랬느냐’고 질문했다. 연출과 촬영, 출연, 내레이션까지 도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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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을 하루 앞둔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김병기 감독은 “4대강 사업에 연루된 누구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지금도 강단에 서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고 했다.

● 영화 ‘삽질’…‘4대강 독립군’의 합작품

‘삽질’은 4대강 사업의 시작과 과정, 참담한 결과를 차근차근 짚는 영화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한강과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서 이뤄진 4대강 사업은 수질 개선과 가뭄·홍수 예방 등을 목표로 내걸고 세금 22조2000억원을 투입한 ‘역대급’ 프로젝트다. 이명박 정권이 추진한 핵심 사업이자 이에 쏟은 세금의 액수를 빗대 ‘건국 이래 최대의 토목사업’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4대강 일대에 나타난 최악의 녹조 사태는 ‘녹조라떼’라는 웃지 못할 단어까지 탄생시켰고, 60만 마리의 물고기가 동시에 떼죽음 당한 충격적인 장면은 지금도 뇌리에 박혀있다. 썩은 강바닥에서는 큰빗이끼벌레라는 괴생물체가 발견되기도 했다.

‘삽질’은 단편적으로 접한 파괴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4대강 사업은 강을 죽인, 대한민국을 속인 희대의 사기극”이라고 주장한다.

김병기 감독은 “사람들은 대부분 잊고 있지만 4대강 사업 전반을 통틀어 가장 기막힌 속임수는 한반도 대운하가 4대강 사업으로 둔갑한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처음엔 민자 유치를 내걸고 국민 세금을 한 푼도 쓰지 않겠다면서 대운하를 추진했다”며 “그러다 (대운하의)사업성을 타진한 기업들이 수익성이 낮다는 판단을 내리자 세금을 투입하는 4대강 사업으로 둔갑시키는 꼼수를 부렸다”고 꼬집었다.

김병기 감독이 관련 취재를 시작한 때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 계획이 막 공개된 2006년이었다. 당시 대운하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증거’로 제시된 독일과 네덜란드 운하 현장을 직접 찾은 감독은 담당 관계자들을 만나 실효성도, 효율성도 낮은 운하의 심각한 문제를 찾아냈다.

감독은 방대한 취재 자료를 모아 각 20분 분량으로 총 5부작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2017년 말부터 지난해 1월까지 온라인 방송으로 먼저 공개했다. “우리가 속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는 5부작 다큐멘터리 공개 과정에서 ‘극장용 다큐멘터리’로 영화화하자는 제안을 받았고, 이를 수락해 94분 분량의 영화가 탄생했다.

이후 ‘PD수첩’의 정재홍 작가가 합류했고, 앞서 4대강 현장을 꾸준히 영상으로 기록한 안정호 프로듀서 등이 모여 팀을 꾸렸다.

‘삽질’은 올해 5월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면서 주목받았다.

“영화화 작업은 쉽지 않았어요. 런닝타임 안에서 사안을 최대한 쉽게 설명하는 게 관건이었습니다. 쉽게 압축해, 단순하게 만드는 게 중요했어요. 영상, 편집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역량으로 가능했습니다. 저는 12년 간의 취재 과정을 녹여내는 역할이었습니다.”

14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의 한 장면. 녹조가 휩쓴 금강은 한 때 ‘녹조라떼‘로 불렸다.

● “자연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

‘삽질’ 제작진은 스스로를 “4대강 독립군”으로 칭한다. 그럴 만하다.

바닥까지 썩은 금강에서 큰빗이끼벌레를 최초로 발견해 세상에 알린 환경운동가 김종술 씨(책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 저자)는 일면 ‘투사’에 가깝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홀로 금강을 지키겠다면서 집에 있는 컴퓨터까지 팔아 비용을 마련해 현장에 살다시피 했다.

큰빗이끼벌레를 처음 발견했을 때 상황은 더욱 극적이다.

김종술 씨는 낯선 괴생물체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에게 이를 보냈지만 ‘확인이 어렵다’는 답을 듣는다. 이를 직접 확인하고자 한 입 떼어내 먹어 보는 ‘생체 실험’까지 감행한 그에겐 지금 ‘금강요정’이란 별명이 붙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어려움은 그 외에도 많다.

영화는 4대강 사업이 기획되고 시행되는 과정에서 주요 결정권자인 정치인들, 관련 부처의 전직 장관들, 컨소시엄에 참여한 건설사 고위 임원 인터뷰 등을 담았다. 물론 누구도 제작진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어떻게든 대답을 회피하려는 4대강 관련자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블랙코미디’의 묘미도 안긴다.

김병기 감독은 “취재 과정에서 가장 화가 난 것은 강을 망쳐놓고도 그때도, 지금도, 떵떵거리면서 사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사과를 한 사람도, 처벌받은 사람도 없다. “아이들이 뛰어놀아야 할 그 강을 망친 장본인들이 강단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 감독은 “바로 그들의 현재 모습까지도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정치적인 눈이 아닌 편견 없이 강을 바라보는 게 중요했어요. 자연은 거짓말 안합니다. 세종보를 연 금강은 2년 사이 많이 달라졌어요. 물고기 60만 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그곳에 철새가 돌아왔고 재첩이 살아났고 멸종위기 종들이 다시 왔어요. 2017년에 금강의 녹조 발생일수가 119일 정도인데 지난해는 59일로 줄었습니다. 올해는 단 하루도 없었죠. 수문을 여니까 바뀐 겁니다.”

4대강 생태계에 대한 수치까지 줄줄 읊는 감독은 “시사회로 영화를 본 고등학생들이 엄지를 세워주고, 이외수 작가가 명진 스님, 정연주 전 KBS 사장 등 앞선 정권에서 어려움을 겪은 분들까지 응원해주니 힘이 난다”고 했다.

“스페인 속담에 ‘천년 뒤 강물은 제 길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대자연의 섭리를 인간이 가로막을 수 없다는 뜻이죠. ‘삽질’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일 뿐이지만 천년이 걸릴 일을 백년으로, 백년이 걸릴 일을 십년으로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작은 열망이 모여, 더 이상 삽질은 그만 이뤄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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