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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신 강습소는 민족 교육 틈새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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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신 강습소는 민족 교육 틈새공간”

조종엽 기자 입력 2019-11-06 03:00수정 2019-11-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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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110주년 기념 심포지엄
일제강점기 농촌운동가-교육자… 소설 ‘상록수’ 채영신의 실제모델
일제, 불온사상 온상 핑계로 폐쇄
1933년 1월 열린 샘골강습소(천곡학술강습소) 낙성식. 앞줄 오른쪽에서 5번째가 최용신이다. 최용신기념관 제공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 채영신의 실제 모델이었던 농촌운동가 최용신(1909∼1935·사진)을 재조명한 심포지엄이 열린다. 최용신기념관은 동국대 역사교과서연구소 주관으로 8일 경기 안산시 기념관에서 최용신 탄생 110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 ‘최용신, 기억과 계승’을 개최한다.

정혜정 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교수는 발표문 ‘일제하 사설교육기관과 샘골학원’에서 “일제강점기 최용신의 천곡학술강습소는 크리스천 브나로드 운동으로서 무산자 교육을 위한 계급적 성격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의 안산시 상록구에 1929년 설립된 샘골강습소는 1932년 최용신이 당국의 인가를 받아 천곡학술강습소가 됐다.

정 교수에 따르면 당시 학술강습소와 야학, 개량서당은 일제의 제도권 교육 사이에서 그나마 조선인 본위의 교육을 할 수 있는 틈새공간이었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수가 늘어났다. 학술강습소는 농민운동과 연계됐고, 일제강점기 내내 탄압을 받았다.


기독교계 학술강습소는 탄압이 비교적 덜했지만 최용신이 운영했던 천곡학술강습소는 일제가 보기에 불온성이 강했다. 이는 신간회 수원지회 부회장이던 애국지사 염석주가 강습소 설립을 도운 것에서도 나타난다. 천곡학술강습소는 수업 시간에 민족관념을 교육하고, 일본어가 아닌 조선어를 국어라고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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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933년 4월 총독부는 사상운동의 진원지로 생각되는 사설 학술강습소 800여 곳과 농민조합 1100여 개를 폐쇄하기로 했다. 학술강습소가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사상의 주입’ 혹은 ‘실행소’라고 본 것이다. 최용신 사후 동생 최용경이 사업을 이어가던 천곡학술강습소도 1936년 6월 당국의 폐쇄 명령을 받았다. 당국은 강습소 폐쇄에 ‘교육의 결여’ ‘불완전한 교육’이라는 핑계를 댔다.

정 교수는 “1920년대 교육문화운동은 무산자에게 초점을 둔 인간해방의 맥락을 내포한 것이었고 1930년대 동아일보의 브나로드 운동 역시 빈민, 농민, 민족을 구하는 민족해방, 계급해방의 목표를 담아낸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샘골강습소#최용신#소설 상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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