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담배 규제, 담배 종결의 시발점[기고/박순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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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우 대구가톨릭대 의대 교수
박순우 대구가톨릭대 의대 교수
담배가 건강과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것은 상식이 됐다. 담배회사에서 가열담배(궐련형 전자담배)라는 신제품을 개발해 유해성을 줄였다고 선전하는 것 자체가 담배회사 스스로 기존 궐련의 유해성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담배회사가 가열담배보다도 유해성이 적다고 주장하는 ‘액상형 전자담배’(전자담배)가 이슈의 전면에 떠오르고 있다. 한국에서는 전자담배 사용률이 2013년 첫 조사 이후 최근까지 3∼4%에 머물면서 궐련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특히 미국 청소년 사이에서 선풍적인 유행을 일으킨 쥴(Juul)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전자담배가 지난해 5월 말 수입되면서 보건당국과 전문가들을 긴장시켰다. 급기야 미국에서 전자담배로 인한 폐 손상 환자가 1500명 가까이 발생하고 사망자가 30명을 넘어서자 한국 정부도 전자담배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달 23일 정부가 발표한 ‘액상형 전자담배 안전관리 대책’은 전자담배 사용 금지를 강력히 권고했다. 이번 대책은 그동안 오랜 숙제였던 담배의 법적 정의를 연초의 잎뿐만 아니라 줄기나 뿌리에서 추출한 니코틴 제품 전체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 전자담배로 인한 유해성 조사, 담배에 가향(加香)물질 첨가 금지, 청소년 대상 전자담배 기기 판매 금지, 제조 및 수입업자에 대한 구성 성분 정보 제출 의무화 등 비교적 포괄적인 내용을 담았다. 유해성이 확인되면 판매 금지 조치까지 검토하겠다고 했다. 앞서 5월 발표한 금연종합대책을 일부 보완할 수 있고 정부가 선제 대응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미국의 경우 전자담배에 포함된 대마(大麻) 성분(THC·환각을 일으키는 대마초의 주성분)이 주로 문제가 된 것에 비춰 우리 정부가 사용 금지 권고로 대응한 것은 지나치다는 일부 견해도 있다. 하지만 시중에서 판매되는 각종 전자담배의 성분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이번 조치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 있다. 담배회사에서는 가열담배나 전자담배가 궐련보다 유해성이 적다는 이른바 ‘위해(危害) 감축’ 효과를 주장한다. 그러나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전자담배 역시 유해성이 큰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상황에서 전자담배보다 더욱 해로운 궐련에 대해 ‘위해 증가’의 시각에서 금연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궐련이나 가열담배에 대해서는 전자담배 대책에 비해 더욱 강력한 규제를 통해 국민건강 보호 조치를 취해야 한다. 특히 전자담배 사용 금지 권고가 마치 전자담배 대신 궐련을 피우라는 메시지로 왜곡돼서는 절대 안 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국민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정부에서 전자담배 규제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은 니코틴을 함유한 담배 제품 전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확대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전자담배 규제 조치가 ‘담배 종결전’의 시발점이 돼 금연 정책 역사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

박순우 대구가톨릭대 의대 교수
#전자담배#액상형 전자담배#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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