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청와대판 ‘관객모독’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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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받으며 궤변 늘어놓은 청와대… 국정 혼란이 논리적 언술까지 파괴
한트케 연극 ‘관객모독’의 욕설처럼 강기정 정무수석이 쏟아낸 고함
국회 넘어 국민 모독 수준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 같은 불안은 세르비아의 전 대통령 밀로셰비치 때문일 것이다. 인종 학살을 한 그를 옹호했다나. 페터 한트케가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관객모독으로. 연극을 좋아하지는 않아도 멋모르고 ‘고도를 기다리며’ ‘관객모독’ 같은 연극을 보게 될 수 있으니 조심할 것. 안 보는 게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정경심의 PC 반출은 증거인멸이 아니라 증거보전이다. 유시민의 궤변, 노벨궤변상감이다. 공지영은 관객모독에서 배운 바가 있나 보다. 억지도 대놓고 부리면 문학이 된다. 때로 혁명적 당파성까지 인정받을 수 있다. 그래도 그들은 궤변 늘어놓는 대가로 국민 세금은 받지 않는다.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궤변을 늘어놓는 청와대도 있다.

자고 일어나면 미사일 발사다. 그것도 신형. 이스칸데르. 초대형 방사포. 북한이 올해 12차례 미사일을 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우리도 북한 못지않게 미사일 발사 시험한다고 했다. 미사일을 몰래 쏠 수도 있나. 나라에서 그렇다고 하니 믿어 보자. 우리 미사일 능력이 북한보다 우수하다고도 했다. 그것까지 믿어 보자. 근데 궁금한 건 그게 아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어떻게 막을 건데? 필요한 답은 않고 딴소리를 하고 있다. 의미 없는 말들.

내년 예산안을 짜려면 세수 전망이 있어야 한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있어야 내년 전망치가 나오고 그에 맞춰 세수 전망이 나온다. 세수 전망이 나와야 필요한 국채 규모가 나오고 예산안을 짤 수 있다. 이호승 경제수석은 그 수치를 기억하지도 찾지도 못했다. 워낙 현실과 동떨어져 알 가치가 없는 수치를 왜 자꾸 묻느냐는 듯 쏘아보던 눈길. 최소한 숫자로는 앞뒤를 맞춘다는 계산적 합리성마저 사라졌다. 의미 없는 수치들.

조국 사태를 둘러싸고 광화문 집회니 서초동 집회니 나라가 찬탁 반탁 시절로 돌아간 듯할 때도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분열이 아니라고 했다. 신묘한 능력으로 하나로 모아지는 국민의 뜻을 읽어냈으니 검찰 개혁이다. 분열을 통합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한쪽에는 있고 다른 한쪽에는 없는 검찰 개혁을 양쪽에 다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헌법보다 높은 문법이다. 대통령이 설혹 헌법을 위반하더라도 문법을 위반할 수는 없다. 지록위마(指鹿爲馬)의 문장들. 억지를 강요하는 문장들. 독재의 문장들. 국정 혼란이 논리적인 언술이나 계산마저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한트케의 연극 관객모독은 의미 없는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러분이 아직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은 여기서도 듣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본 적이 없는 것은 여기서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들어본 적이 있는 것을 들려주는 것도 아니고 본 적이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대사는 이어진다. “여러분은 늘 보았던 것을 여기서 전혀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늘 들었던 것을 여기서 전혀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연극 보고 싶은가? 그래서 관객모독이다. 그래도 최소한 문법적으로는 말이 되기 때문에 돌아버릴 지경은 아니다.

관객모독이 의미 없는 말들로만 채워졌다면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유명해지지는 못했다. 모독에도 클라이맥스가 있다. 욕설이다. 돈 내고 연극 보러 와서 막판에 끝이 없을 듯 이어지는 욕설을 들어야 한다. “허풍쟁이들아, 맹목적인 애국자(쇼비니스트)들아, 혐오스러운 상판대기들아, 비굴한 작자들아, 소심한 작자들아, 가치 없는 작자들아….”

청와대판 관객모독의 클라이맥스는 강기정 정무수석이 맡았다. 의미 없는 말들이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갈등이 최고로 고조되는 지점에서 고함이 터졌다. 반발을 불러일으킨 말은 ‘우기다’가 차지했다. 정 실장이 “북한 미사일은 우리에게 위협이 안 된다”며 근거도 대지 못한 채 의미 없는 말을 반복하자 ‘우기지 말라’는 항의가 쏟아졌고 정 실장 뒤편에 있던 강 수석이 벌떡 일어나 ‘우기다가 뭐냐’며 소리를 질렀다. 어떤 정권에서도 보지 못한 특이한 장면이기에 클라이맥스로서는 인상적이었다. ‘촛불혁명’의 역사화로 그려놓아도 될 듯하다. 뭉크의 비명처럼 강기정의 고함이란 제목으로. ‘그로테스크하게’라는 지문을 달아서. TV로 지켜보는 사람이 야단맞는 기분이 들 정도로 실감났다. 역시 깡패 역은 강기정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청와대#관객모독#국정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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