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학생들 “교내 자판기 설치 허용을” 교육청 청원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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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습관 개선” 탄산음료 금지하자 서울교육청, 5년전 자판기 없애
다른 시도선 건강음료조건부 허용… 학생들 쉬는 시간마다 ‘음료전쟁’
교육청 “논의거쳐 허용여부 검토”

서울 동대문구 A고등학교 복도와 계단은 쉬는 시간마다 북새통이다. 학생들이 별관 지하 1층의 매점으로 몰리는 탓이다. 음료 1개를 사기 위해 매점으로 달려가 줄을 서고 다시 교실로 돌아오려면 쉬는 시간 10분은 너무 짧다.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린 뒤 미처 다 마시지 못한 주스를 들고 교실로 뛰어가는 학생도 많다. 학생 B 군(18)은 “각 층마다 자동판매기 1개씩만 있으면 쉬는 시간에 이리저리 뛰어다닐 필요가 없을 것 같다”며 “날씨가 더워 음료수 사먹는 아이들이 많을 때에는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학교 내 음료 자동판매기(자판기) 설치 금지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최근 서울시교육청 학생청원게시판에는 ‘교내 자판기 설치를 허용해 달라’는 한 여학생의 글이 올라왔다. 이 학생은 “학생회 설문조사 결과 84%의 학생이 자판기 설치에 찬성했다. 자판기 설치 여부는 각 학교가 필요에 따라 결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라고 요청했다. 3일 현재 해당 게시물은 710명의 동의를 얻어 최다 추천 청원에 올랐다.

교육부가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은 2014년 ‘학교보건 기본 방향’을 통해 교내 음료 자판기 설치를 금지했다. 2006년 국가청소년위원회가 학생들의 식습관 개선을 위해 콜라나 사이다 같은 탄산음료의 교내 판매를 금지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하지만 나머지 16개 시도교육청은 탄산·카페인 음료를 제외하는 조건으로 교내 자판기 설치를 허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지역 학생들은 “왜 서울 학교에서는 물이나 주스 한 개도 편하게 먹을 수 없느냐”며 과도한 규제라는 불만이다. 일부에서는 정책의 실효성도 지적하고 있다. 학교 정문만 나서도 주변에 수많은 편의점이 있고 마음대로 탄산음료를 사서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은평구의 한 고교 교사 C 씨(50·여)는 “교문 바로 앞에서 탄산음료는 물론이고 카페인이 많이 든 캔커피나 에너지드링크도 아무렇지 않게 판매하는데 교내 자판기만 금지한다고 학생들 건강을 지킬 수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학생 건강권에 민감한 외국의 학교들도 자판기 설치를 아예 금지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미국은 학생 건강을 위한 간식 영양기준을 정하고 탄산음료 등의 교내 판매를 제한하지만 자판기 설치를 막지는 않는다. 일본은 자판기 설치를 허용하면서 우유와 주스 등으로 대상을 명확히 하고 있다.

곽 의원은 “건강음료만 마실 수 있게 하면 되는데 굳이 자판기 설치까지 금지한 건 지나치다”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청소년 비만 등 학생들의 건강 문제 때문에 교내 자판기 설치를 제한한 것”이라며 “자판기 설치를 허용하면 위생 관리 등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 논의를 거쳐 설치 허용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서울교육청#교내 자판기#학교보건 기본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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