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작은 휴게소에서 ‘지축 흔드는 맛’을 느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3일 16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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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해발 4000m 근접한 티베트 동부 지역을 여행하던 중 두 시간마다 휴게소에 들렀다. 동네 주민들은 여행자들이 칸막이 화장실에 들를 때 간식을 살 수 있도록 좌판을 열었다. 따뜻하게 삶은 달걀과 옥수수, 찐빵부터 야생 버섯류와 과일, 밤과 고추, 동충하초까지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아주 작은, 초록빛과 붉은빛이 돌며 귤과 레몬향이 강하게 퍼지는 산초를 발견했다. 한 조각을 입에 넣고 향과 맛을 음미하는 순간 입술과 혓바닥은 마비될 듯 미세하게 떨렸고, 강한 향은 한 대 맞은 기분이 들 정도로 강하게 느껴졌다. 나의 얼떨떨한 표정을 바라보던 중국인 가이드는 운전사들의 졸음운전을 막는 약 대용으로 사용한다고 얘기해 주었다.

‘산쇼 페퍼’라 부르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후추나 고추 같은 식물은 아니다. 뾰족한 바늘을 가진 귤, 레몬류에 속하며 한중일을 비롯한 아시아와 인도에서 자란다. 북미에서는 ‘치통 나무’로 알려져 있다. 어린 나무의 껍질과 덜 익은 열매를 씹으면 치통 완화 효과가 있어서다.

산초의 모든 부분은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봄에 나온 어린잎은 국에 넣고, 갈아서 소스로 쓴다. 한국 사찰에서 비슷한 방법으로 활용한다. 꽃은 요리를 완성하는 장식으로 쓰기도 하지만 튀겨 먹기도 한다. 여름에 꽃이 지고 씨가 생기면 장아찌와 조림으로, 가을에 열매가 완전히 익어 벌어지면 까만 씨는 버리고 열매를 싸고 있던 불그스름한 껍질 부분을 갈아 요리에 쓴다. 절굿공이로 산초나무를 잘라 사용하면 더 깊은 향을 느낄 수 있다. 일본에서는 꼬치구이, 장어구이의 완성으로 이렇게 금방 간 산초가루를 뿌려 낸다.

산초나무는 암수가 구분되어 있고 가시가 있지만 아사쿠라 산초라 불리는 종만은 가시가 없다. 약 400년 전 한국을 통해 일본에 전해졌다.

후추, 고추, 산초 등 세 가지 매운 맛은 맛을 아는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어렵다. 산초가 지닌 특수한 매운 맛을 건전지가 혓바닥에 닿을 때 느껴지는 아주 미세한 전자력을 동반한 쇼크라 표현하기도 한다.

요즘 한국에서는 사천요리 ‘마라’가 유행이다. 중국 사천지방에서는 춥고 덥고 습한 기후를 이겨내고자 기름지고 향이 강한 매운 산초를 이용한 마라탕(샤부샤부)을 이틀에 한 번 정도 먹는다고 한다. 고추와 산초에서 우러나온 진한 향과 빨간 기름층은 한국에서 먹어본 마라탕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천요리에 많이 사용하는 오향가루는 팔각, 정향, 계피, 펜넬 씨와 사천고추가 포함된다. 사천고추는 미슐랭 셰프들의 요리를 통해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칵테일에서 디저트까지 다양하다. 나는 소금과 고추를 반씩 넣고 약한 불에서 드라이 로스팅을 한 후 곱게 갈아 스테이크를 구울 때 사용하는데 프렌치프라이에 뿌려 맥주를 곁들어도 최고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새로운 조합도 좋지만 프랑스의 부야베스를 먹을 때 사프란이 빠질 수 없듯 조리법이 비슷한 추어탕에도 마지막 완성에 사용되는 산초가루는 깊은 땅속에서 우러난 신비의 향과 같아서 입술과 혀에 닿으면 미세하게 움직이는 지축의 맛처럼 느껴진다.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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