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들이 부럽네요”…父子 ‘안방마님’의 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일 16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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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들이 부럽네요, 허허”

박철우 두산 퓨처스 팀(2군) 감독(55)은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한 아들 박세혁(29)의 모습을 직접 보지 못했다. 시리즈 기간 2군 선수들을 이끌고 일본 미야자키에서 열린 교육리그에 참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주전 포수로 발돋움한 박세혁은 두산의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의 주역. 정규시즌 때는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NC로 떠난 양의지(32)의 빈자리를 말끔하게 메웠다. 키움과의 한국시리즈에서는 타율 0.417(12타수 5안타)에 4타점의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올 한 해 내 마음 속의 최우수선수(MVP)는 단연 박세혁”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박 감독-박세혁은 KBO리그 사상 첫 한국시리즈 ‘부자(父子)’ MVP 기록도 세울 뻔했다. 박 감독은 해태 시절이던 1989년 빙그레와의 한국시리즈에서 타율 0.444를 기록하며 MVP에 올랐다. 박세혁 역시 MVP를 받기에 손색이 없었다. 지난 달 26일 한국시리즈 4차전 8회말 이후 실시한 기자단 투표에서는 박세혁이 56표로 최다 득표를 차지했다. 하지만 9회말 경기는 다시 동점이 되면서 연장 10회 결승타를 때린 오재일이 경기 후 재실시 된 기자단 투표에서 36표를 얻어 박세혁(26표)을 제쳤다.

아쉽게 MVP는 놓쳤지만 박세혁은 평생 이루고 싶었던 또 하나의 꿈을 대신 이뤘다.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로 나서게 된 것이다.


여기에도 사연이 있다. 6일 시작되는 프리미어12에 출전하는 한국 대표팀 김경문 감독은 정규시즌 최종전인 10월 1일 NC-두산전을 보다가 박세혁의 이름을 지웠다. 경기 중반까지 두산이 뒤지면서 정규시즌 우승이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세혁의 끝내기 안타로 두산은 기적처럼 우승을 확정지었다. 김 감독은 “만약 두산이 졌다면 박세혁을 안 뽑으려 했다. 올림픽이나 프리미어12와 같은 단기전은 기 싸움이다. 그런데 박세혁의 기(氣)가 역시 세더라. 대표팀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세혁은 상무 시절이던 2015년 국가대표로 뽑혀 아시아선수권 우승에 힘을 보탠 바 있다. 하지만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드림팀’의 일원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세혁은 “성인 대표팀 국가대표는 아버지의 못 이룬 꿈이기도 하다.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하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대학과 프로시절 꽤 야구를 잘했던 아버지 박 감독은 이상하리만치 국가대표와는 인연이 없었다.

박 감독은 “그제 모처럼 밥을 함께 먹으면서 ‘대표팀에 가거든 모든 사람들에게 행동 잘하라’고만 조언했다”고 말했다. 야구 얘기는 왜 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이제는 세혁이가 나보다 야구를 훨씬 잘 하니까”라며 웃었다.

한국 나이로 30살에 주전이 된 ‘늦깎이’ 박세혁은 항상 자신의 앞에 있었던 양의지와 함께 대표팀 안방을 지킨다. 한국은 6일 시작되는 프리미어12에서 내년 도쿄올림픽 출전권을 노린다.

이헌재 기자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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