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불법 심야교습 갈수록 성행…단속뜨면 문 잠그고 새벽까지 버티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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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0월 31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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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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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연지 겨우 한 달 됐는데 행패도 아니고 이게 뭡니까?”

지난달 24일 오후 10시 반 서울 양천구 A영어학원 안내데스크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학원 원장과 교육지원청 직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 것이다. 심야교습 단속을 나온 교육지원청 직원들이 학원 강의실로 향했다. 그러자 원장은 이들을 잡아 당기며 “한 번만 봐 달라”고 사정했다. 원장은 “한 달에 200~300만 원씩 받고 새벽 4시까지 공부시키는 대형 학원도 많다. 우리처럼 작은 곳을 꼭 단속해야 하냐”라고 항변했다. 이날 단속은 1시간 가까이 이뤄졌다. A학원을 비롯해 근처 학원 3곳이 학생들을 가르치다 적발됐다.

‘학원 심야교습 금지’ 조례에 따라 오후 10시 이후 학원 수업은 불법이다. 학생의 건강권을 지키고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2008년 서울시교육청이 처음 도입했다. 이후 심야교습 금지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처벌 규정도 엄격하다. 서울의 경우 오후 10시 이후 1시간 이내 교습을 하다 2회 이상 적발되면 즉각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진다. 1회 적발 기록이 2년간 지속되기 때문에 학원들은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만약 오후 10시에서 2시간이나 넘겨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2회 이상 적발되면 등록이 말소된다.

하지만 학원가에서는 “불법 심야교습이 갈수록 성행 중”이라고 말한다. 교육당국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갖기지 편법까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교습장소 ‘바꿔치기’가 대표적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등 학원 밀집지역에서는 오후 10시에 학원을 나서는 아이들이 강사와 함께 근처 스터디 카페로 이동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방식의 연장교습은 보통 2시간가량 진행된다.

교육당국이 현장을 적발해도 불법을 인정하지 않고 강하게 항의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심지어 불시 단속이 시작되면 강사와 학생이 학원 문을 걸어 잠그고 새벽까지 버티는 경우도 있다. 교육지원청 직원은 문을 따고 강제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경우 사실상 단속이 불가능하다. 한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새벽 1~2시까지 대치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며 “점검 대상이 많아 한 곳에서 시간을 허비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31일 서울시교육청이 최근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학원 심야교습 적발은 2017년 141건에서 지난해 176건으로 증가했다. 2회 이상 적발로 교습 정지 처분이 내려진 학원은 2017년 7곳에서 지난해 9곳, 올해는 7월 말까지 10곳이었다.

학생들의 심야 학습시간도 규제 전후 큰 차이가 없다. 통계청이 5년 단위로 조사하는 학생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오후 10시 이후에도 학원이나 과외, 자습 등의 방식으로 공부하는 고등학생은 조례 도입 전인 2004년과 도입 후 2009·2014년 모두 20%대로 비슷하다. 박현욱 군(18·고3)은 “오후 10시에 학원이 끝나자마자 바로 옆 독서실로 간다. 학원 끝났다고 바로 집에 가는 고등학생이 몇 명이나 되겠냐”라고 반문했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최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추진 중인 ‘학원 일요휴무제’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자칫 규제만 늘리고 풍선효과가 유발할 수 있어서다. 신현욱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정책본부장은 ”학생 건강권을 지키자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결국 부작용만 커졌다. 교육당국은 규제를 추가할 게 아니라 시행 중인 규제의 부작용부터 개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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