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적으로 오보 낙인땐 언론보도 통한 실체규명 봉쇄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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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훈령 ‘언론통제’ 논란
실제 조범동 펀드의혹 본보 보도때 법무부 청문준비단 “오보” 단정
조씨 구속으로 오보 아닌것 드러나
오보-인권침해 기준 적시 안돼… 전문가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

“‘블루코어밸류업 1호 펀드 실질 오너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친척 조모’라는 의혹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올 8월 19일 조 전 장관 인사청문회 준비단 공식 발표)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사모펀드 직접 투자 의혹이 한창 제기된 8월 중순 법무부 인사청문회 준비단은 언론의 의혹 제기를 이렇게 반박했다. 정 교수가 투자한 사모펀드 운용사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 총괄대표가 조 전 장관의 5촌 조카 조범동 씨(37·수감 중)라는 언론 보도를 법무부가 오보라고 한 것이다.

그로부터 두 달여 뒤인 30일 법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 관계인 등의 명예를 훼손하는 오보를 낸 기자에 대해 검찰청사 출입을 제한하는 규정을 12월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 규정대로라면 법무부가 오보라고 했던 조 씨 관련 의혹을 보도한 대다수 언론은 조 전 장관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출입할 수 없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은 조 씨를 코링크PE 관련 주가 조작의 주범이자 회삿돈 72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법무부가 공개한 규정이 시행되면 법무부가 선제적으로 오보 대응을 한 뒤 실체적 사실 관계에 대한 규명을 원천 봉쇄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검찰과거사위원회가 피의사실 공표 등 검찰의 수사 관행 개선을 권고하자 올 7월 말 법무부는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 제정을 추진했다. 이는 2010년 4월부터 시행 중이던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을 전면 개조한 것이다. ‘공보’가 ‘공개 금지’로 바뀐 명칭처럼 내용도 국민의 알권리보다 언론 통제에 초점을 맞춰 논란이 일었다.

그런데 법무부는 초안에도 없던 내용을 추가해 규정을 확정한 뒤 시행 시점을 12월로 못 박았다. 초안에 없던 대표적인 조항이 ‘사건 관계자와 검사를 비롯한 수사 업무 종사자에 대한 명예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오보가 나오면 검찰총장이나 각 검찰청의 장이 기사를 쓴 기자의 검찰청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법무부 측은 “‘공보준칙의 오보 또는 추측성 보도를 한 언론기관 종사자에 대해 브리핑 참석 또는 청사 출입 제한’으로 규정돼 있던 것을 ‘추측성 보도’를 삭제하고 ‘검찰청 출입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변경한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 보도에 대해 오보라고 판단하거나 명예가 훼손됐다고 볼 경우 해당 언론사 취재를 제한하겠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 규정에 오보, 인권 침해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적시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현직 부장검사는 “검사가 기소한 사건이 무죄 선고 나면 검찰청사 출입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말이냐”고 되물었다.

법무부가 청와대와 여당만 바라보고 규정 제정을 서둘렀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수사 과정에서 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형사사건 공개 금지에 관한 규정’을 10월 안에 제정하겠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검찰과 변호사 단체 등의 의견 수렴을 거쳤다고 했지만 대한변호사협회는 “의견 회신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고, 대검은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 이 때문에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알권리의 균형을 위해 마련됐다”는 법무부의 설명과 달리 법무부가 조 전 장관 수사에 대한 분풀이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헌법 정신에 규정된 표현의 자유를 위반하고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했다.

황성호 hsh0330@donga.com·김동혁·김정훈 기자
#법무부#오보 통제#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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