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쉬어도 될까요”…영구 안식처 찾은 워싱턴 평화의 소녀상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28일 23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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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평화의 소녀상이 되어 나 여기까지 왔네요 / 나 이제 정말 쉬어도 될까요 / 참으로 긴 시간을 나 쉼 없이 달려왔나 봐요….”

27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 한인타운인 애넌데일의 한 건물 앞마당. 한복을 차려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91)가 시낭송을 시작하자 행사장이 순간 숙연해졌다. 이곳에서는 2016년 11월 미국 워싱턴에 도착했지만 일본 측 방해로 보금자리를 찾지 못한 채 창고에 머물렀던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3년 만에 열렸다.

구슬픈 가락의 살풀이춤 등 기념 공연이 이어지는 동안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길 할머니는 마침내 소녀상이 가리개를 벗고 모습을 나타내자 옛 동무를 만난 듯 환한 웃음과 함께 꽃목걸이를 건네주며 소녀상을 연신 쓰다듬었다.

이재수 민주평통 워싱턴협의회장은 이날 기념사에에서 “마침내 해냈다”며 “평화와 인권의 상징인 소녀상을 워싱턴 인근이자 한인 지역에 건립해 우리 후손들에게도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높이 123cm의 소녀상은 올 8월 광복절을 맞아 주미 일본 대사관 앞 시위현장을 찾는 등 잠시 빛을 봤지만 건립 부지를 마련하지 못해 다시 창고로 향해야 했다. 이후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한 한인교포가 자신의 건물 앞에 장소 제공 의사를 밝혔고 해당 버지니아 주 역시 이를 환영해 소녀상 건립이 성사됐다. 이날 행사에는 위안부 결의안 미 의회 통과에 중추적 역할을 했던 마이크 혼다 전 하원의원이 축전을 보냈고, 저스틴 페어팩스 버지니아 주 부지사 등 주요 지역 인사들도 참석했다.

행사 직후 패어팩스 부지사는 “이번 소녀상 설치는 한인 사회만이 아닌 850만 버지니아 주민도 함께 하는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이 곳에 왔다”며 “진정한 화해는 역사적 희생자들을 기리고 진실과 마주할 때만 가능하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었다”며 일본을 향한 뼈있는 충고를 남겼다. 이 평화의 소녀상은 캘리포니아 미시간 조지아 뉴욕에 이은 미국 내에서 다섯 번째로 설치된 소녀상이다.

애넌데일=김정안 특파원 j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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