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방랑-전쟁-사랑… 인간을 향한 세 작가의 시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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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들/올가 토카르추크 지음·최성은 옮김/620쪽·1만6000원·민음사
◇잘못된 만찬/이스마일 카다레 지음·백선희 옮김/248쪽·1만3800원·문학동네
◇조반니의 방/제임스 볼드윈 지음·김지현 옮김/352쪽·1만4800원·열린책들

지난해 건너뛰었던 노벨 문학상을 올해 수상한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 ‘방랑자들’은 지난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이다. 알바니아 출신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는 암울한 현실을 우화적 기법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미국 작가 제임스 볼드윈은 흑인 민권 운동가로도 활발히 활동했다.(왼쪽 사진부터) 뉴시스
지난해 건너뛰었던 노벨 문학상을 올해 수상한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 ‘방랑자들’은 지난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이다. 알바니아 출신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는 암울한 현실을 우화적 기법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미국 작가 제임스 볼드윈은 흑인 민권 운동가로도 활발히 활동했다.(왼쪽 사진부터) 뉴시스
《스산한 가을을 맞아 굵직한 해외 작가의 장편 3권이 국내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출간됐다. 노벨상 수상자와 노벨상 단골 후보, 현대 미국 문학사의 문제작가…. 독특한 형식과 진중한 시각이 돋보이는 세 작품을 함께 소개한다. 》

○ 방랑자들

올해 1월 국내에 선보인 ‘태고의 시간들’을 만난 뒤로 이따금 올가 토카르추크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격조 있는 애처로움과 비애, 영계에 다녀온 듯한 잔향…. 명작들 사이에서도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내뿜었다.

이번 책은 장편소설치고도 꽤 두툼하다. 목차만 무려 다섯 페이지. 112개의 조각글이 실렸는데, 화자 상황 메시지 장르가 모두 다르다. 두 줄부터 열세 장까지 분량도 제각각이다. 여느 소설처럼 줄거리나 시간 순을 따르지 않는다. 여행에 대한 텍스트의 묶음으로, 형식적인 재미를 더했다.

“금방 그곳에 뿌리내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그런 유전자가 내게는 없었다.” “모든 여행자의 시간은 수없이 많은 시간이 하나로 모인 결합체다.” “호스텔은 연령 차별주의 혐의로 고소를 당해야 마땅하다”….

떠나고 머무르는 이들의 자기고백 혹은 이들에 대한 관찰기가 이어진다. 공항, 여행안내서, 지도, 호스텔에 대한 단상도 담겼다. 이동하는 육신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흔들림으로 존재하는 인간에 대한 성찰기다. 일상의 틈새로 두고 보며 방랑의 여운을 느끼길 권한다.

○ 잘못된 만찬

단순하지만 기묘하게 뒤얽힌 인물들의 관계, 쉴 틈 없이 내달리는 이야기. 페이지가 훅훅 넘어간다. 전쟁, 고문, 죽음, 독재, 파괴를 줄기로 한 비극이지만 우스꽝스러운 대목이 적지 않다. 부조리한 사회를 유머로 비트는 작가의 장기가 집약된 소설이다.

아스마일 카다레는 조국 알바니아의 이야기를 주로 써온 거장이다. 이 책의 배경도 물론 알바니아다. 이탈리아가 물러난 알바니아 남부 도시 지로카스트라에 독일군이 진군한다. 약소국의 지위에 익숙해진 주민들은 독일군을 믿느냐 아니냐를 두고 고민에 빠진다. 독일 군대를 이끄는 프리츠 폰 슈바베 대령은 뮌헨 시절을 함께한 형제와 다름없는 옛 친구를 이곳에서 조우한다. 알바니아인 의사 구라메토다.

그러나 오랜 해후의 기쁨은 곧 어그러진다. 알바니아 저항군이 독일군 척후병을 공격하고, 슈바베 대령은 알바니아인 인질들을 광장에 붙잡아둔다. 그리고 대령을 자신의 집에 초대해 저녁을 대접하는 구라메토. 이날 만찬으로 인질들은 풀려나지만 참석자는 모두 사지가 굳어 죽은 채 발견된다.

페이지를 듬성듬성 넘기면 ‘잘못된 만찬’의 진실을 만나기 쉽지 않다. 역사적 비극을 신화의 단계로 끌어올리면서 읽는 즐거움까지 잡은 거장의 솜씨가 눈부시다.

○ 조반니의 방

“당신이 내게 웃을 땐 증오스러웠어. 남들한테 다 짓는 웃음을 나한테도 짓고, 남들한테 하는 말을 나한테 하고….”

데이비드에게 독설을 토해내던 조반니의 눈에 이내 눈물이 고인다. “나는 혼자 설 수 없다는 것, 알고 있었잖아. 대체 왜 안 되는 거야?” 그저 상황을 피하고만 싶은 데이비드와 달리 조반니는 필사적으로 그를 원한다.

정념의 밑바닥을 훑는 사랑 이야기다. 삼각관계, 계급 격차와 사랑, 성소수자 문제가 서사와 긴밀히 얽혀 무게감을 더한다. 미국인 데이비드는 파리에서 이탈리아인 바텐더 조반니를 만나 한눈에 반한다. 데이비드에겐 헬라라는 약혼녀가 있다. 데이비드와 조반니는 성별이 같다. 모든 것을 내어주는 조반니와 달리 데이비드는 교묘히 선택과 책무를 회피한다.

1900년대 초반을 흑인이자 성소수자로 살아간 미국 작가 제임스 볼드윈이 썼다. 저자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백인 남성이 가져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해 분열하는 데이비드를 냉소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사랑은 개인적인 것이며 누구에게나 그러해야 한다”던 볼드윈의 외침이 주는 울림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방랑자들#잘못된 만찬#조반니의 방#올가 토카르추크#이스마일 카다레#제임스 볼드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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