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발로 안되면 휠체어에서 탁구 치겠다”[양종구 기자의 100세 건강]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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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발에 의지한 손해복 장수한의원 원장이 19일 서울 서초구 이상국탁구교실에서 탁구를 치며 즐거워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목발에 의지한 손해복 장수한의원 원장이 19일 서울 서초구 이상국탁구교실에서 탁구를 치며 즐거워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양종구 기자
양종구 기자
태어나자마자 소아마비를 앓고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아 평생 두 발로 걸어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 목발을 짚고 나가면 아이들이 놀려 밖에도 나가지 않았다. 탁구를 치면서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탁구와 함께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손해복 장수한의원 원장(58)은 “탁구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친구이자 영원한 동반자”라고 강조했다.

“난 초등학교를 사실상 3년밖에 안 다녔다. 친구들이 절름발이라고 놀려 3학년까지는 학교에 가기 싫었다. 제적당하지 않을 정도로 가끔 갔다. 4학년 때부터는 제대로 다니기 시작했고 탁구를 치기 시작한 6학년 때부터는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다.”

아버지께서 마당에 마련해준 탁구대가 손 원장의 인생을 바꿨다. 목발 하나를 짚고 쳤지만 너무 재미있었다. 그는 “넘긴 공을 상대가 못 치게 만드는 게 탁구의 묘미였다. 바로 빠져들었다”고 했다.

처음엔 세상과 담을 쌓기 위해 탁구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놀리니 밖에 나가기 싫어서 아버지와 두 형하고만 탁구를 쳤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친구들이 탁구대가 있는 손 원장의 집을 찾기 시작했고 함께 탁구를 치며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손 원장은 “내 성격이 모나지 않으면서 긍정적이고 활동적으로 바뀐 것도 탁구 덕분”이라고 했다. 중고교 시절엔 반장도 하면서 공부 잘하는 친구부터 못하는 친구까지 두루 사귀었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스타일이라 고교 3학년 때는 전국장애인탁구대회에 출전해 준우승도 차지했다.

경희대 한의대에 진학하면서 탁구와 잠시 ‘이별’했다. 한의학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6년을 공부하고 국가고시까지 준비하느라 탁구 칠 짬을 내기 힘들었다. 한의원을 내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도 좀처럼 시간을 내지 못했지만 결국 건강 때문에 다시 탁구 라켓을 잡았다.

“어느 순간 체중을 재보니 놀랄 정도로 늘어 있었다. 혈압도 110에 180까지 오를 정도였다. 이러다가는 오래 못 살 것 같아 방법을 찾았고 그게 탁구였다.”

2007년 당시 초등학교 2학년 아들과 집 근처 탁구장을 찾았다. 배가 많이 나와 땅에 떨어진 공을 못 잡을 정도였다. 아들과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쳤다. 역시 탁구는 좋았다. 짧은 시간에도 땀에 흠뻑 젖었다. 그때 이후로 진료를 마치고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탁구장으로 향한다. 2010년 ‘반포탁사랑’이란 동호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을 했다. 회원이 46명이다. 늘 탁구를 치며 함께 어울린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서울시장애인탁구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탁구는 다시 그를 세상과 연결했다. 건강도 되찾았다.

“솔직히 장애인으로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많지 않다. 목발에 의지하지만 탁구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다. 내겐 더없이 좋은 건강 유지법이자 소통 통로이다.”

손 원장은 “비장애인과 격의 없이 지내고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는 관계를 유지하는 밑바탕이 탁구다. 건강을 위해 탁구를 시작했지만 지금은 탁구 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즐거움도 크다”고 말했다.

스포츠심리학적으로 운동(스포츠)을 하면 자기존중감이 상승한다. 김병준 인하대 체육과 교수는 “운동을 하면 몸이 좋아지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탁구같이 상대가 있는 스포츠는 게임을 하며 어울리고, 또 게임을 한 뒤 교류를 하면서 사회적 관계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이렇게 신체적 사회적으로 자신감이 상승하면 삶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삶에 활력이 생기고 하는 일도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탁구 등 하고 있는 종목에 대한 애착도 높아진다. 한번 운동을 시작해 그 참맛을 알면 평생 하는 이유다. 이게 운동의 선순환이다.

손 원장은 반포탁사랑에서 ‘1인자’다. 최근엔 비장애인들이 참가하는 2개의 사회인 탁구대회에서 각각 준우승과 3위를 했다. 손 원장은 “탁구는 내가 살아 있는 이유다. 운동량도 많고 스트레스 해소에 최고다. 탁구를 칠 때가 가장 행복하다. 더 나이 들어 목발 짚고 못하게 되면 휠체어에 앉아서라도 탁구를 치겠다”고 했다. 장애인들도 즐겁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 운동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는 “장애인들의 평균 수명이 비장애인보다 10년 정도 짧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장애로 인한 오장육부의 불균형과 운동 부족이 주된 원인이다”고 말했다.

이제 100세를 사는 시대가 됐다. 건강도 챙기며 평생을 함께할 친구, 운동을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탁구#운동#자기존중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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