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 폴 메이커] “타율은 안 봐요” 한국판 머니볼, 키움 이철진 전력분석팀장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10월 24일 10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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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진 키움 전력분석팀장이 22일 한국시리즈 1차전 경기를 분석 중이다. 잠실|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이철진 키움 전력분석팀장이 22일 한국시리즈 1차전 경기를 분석 중이다. 잠실|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미국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통계 기반 운영 시스템을 다룬 영화 ‘머니볼’은 빌리 빈 단장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명작이다. 작품에는 빈 단장의 오른팔로 피터 브랜드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야구인 출신이 아닌 숫자에 미친 괴짜이지만 빈 단장은 그의 능력을 높게 사고 중용한다. 피터는 실존 인물인 폴 디포디스타에서 영감을 받은 캐릭터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출신의 디포디스타는 오클랜드 부단장을 거쳐 LA 다저스 단장, 뉴욕 메츠 부단장 등을 역임한 뒤 현재 NFL에서 활약 중이다.

‘한국판 머니볼’을 주도하고 있는 키움 히어로즈에도 디포디스타와 비슷한 인물이 있다. 주인공은 이철진 전력분석팀장(34)이다. 이 팀장은 명문대 경제학과 졸업 후 삼성경제연구소에 입사하며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다. 하지만 어딘가 허전함을 채우지 못했다. 그때 이 팀장의 아버지는 “경제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꼭 관련 업무를 할 필요는 없다. 네 심장이 뛰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집 근처 목동야구장에서 히어로즈의 야구를 매일 같이 ‘직관’했던 그의 선택은 야구단 입사였다.

물론 키움은 비야구인의 담론에 상대적으로 열린 구단이다. 하지만 낯선 ‘숫자쟁이’였던 이 팀장은 기록이나 숫자대신 마음으로 팀에 다가갔다. 2014년 말 입사해 국제업무를 맡았던 그는 훈련 후 볼을 돕는 것부터 짐을 나르는 것까지 팀의 궂은일에 함께 했다. 엄밀히 말하면 자신의 영역이 아니었지만 선수단과 심리적 거리감을 단축시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효과는 서서히 나타났다. 선수들은 물론 코칭스태프도 이 팀장이 보여준 팀에 대한 애정에 마음을 열었다. 장정석 감독 부임 이후 전력분석팀의 역할도 커졌다. 선발 로테이션의 경우 짧게는 한 달, 길게는 후반기 전체를 내다보고 계획한다. ‘정확한 예측은 승리 확률을 높이는 지름길’이라는 것이 이 팀장의 철학이다. 철저한 이닝 쪼개기로 포스트시즌 내내 불펜 운용의 신드롬을 일으키는 키움의 힘도 이러한 분석에서 나온다.

키움의 전력분석팀은 타율을 크게 참고하지 않는다. 가령 A투수와 B타자의 상대 전적이 8타수 무안타라고 가정할 때, 잘 맞은 타구가 불운히 정면으로 가거나 호수비에 잡힌 게 4개라면 실제로는 8타수 4안타라고 상정하는 것이다. 반대로 8타수 4안타의 경우가 모두 ‘행운의 안타’라도 표본으로서 가치가 낮다고 본다. 대신 OPS(출루율+장타율), 삼진율, 타구 질을 면밀히 살펴 최적의 매치업을 뽑는다. 이를 수용하는 건 장정석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의 몫이다.키움의 마운드 운용에 단순한 좌우놀이는 찾기 어렵다. A.J. 힌치 휴스턴 감독의 “최고의 불펜은 벤치가 만든다”는 말에 이 팀장이 공감하는 이유다.

이 팀장은 “예측이 맞아 팀 승리 확률을 높일 때의 쾌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며 “올 가을 히어로즈의 기적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각오했다.

잠실|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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