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조피렌 검출’ 공장 이전 압박한 구청…법원 “손해 배상”

  • 뉴시스
  • 입력 2019년 10월 22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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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시 아스콘 공장 인근 주민 민원
지자체, 수시로 단속 나서 공장 압박
법원 "과잉금지원칙 위반…배상해야"

아스팔트 콘크리트(아스콘) 공장 인근 아파트 입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한다는 이유로 수시로 공장 단속에 나선 지방자치단체가 수천만원대 배상책임을 지게 됐다. 지나친 행정지도로 회사의 영업을 방해하고 명예를 실추시킨 데 따른 책임이 있다는 취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7부(부장판사 임정엽)는 제일산업개발이 경기 안양시와 이모 부시장 등 2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22일 밝혔다.

판결이 확정되면 안양시는 재산상 손해 1000만원, 위자료 1000만원 등 총 2000만원을 지연이자와 함께 지급해야 한다.

제일산업개발은 경기 안양시에서 아스콘·레미콘 제조 공장을 운영해왔다. 공장으로부터 80m 떨어진 아파트 입주민들은 지난 2017년 6월 발암물질을 배출하는 공장을 이전해달라고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안양시는 그 직후 공장을 신고대상 악취배출시설로 지정·고시했고, 그해 7월, 9월 3차례에 걸쳐 단속을 실시한 뒤 일부 과적행위 등을 적발했다. 아울러 무허가 대기배출시설을 설치 및 운영했다는 이유로 그해 11월부터 가동개시 신고일까지 공장 사용중지 명령을 내렸다.

제일산업개발이 대기오염물질 배출 방지시설을 추가로 설치한 후에도 안양시는 경기도에 ‘주민 건강과 생활 환경에 현저한 위해가 될 수 있으므로 주민들의 생활권 보호 차원에서 불허가 처분을 적극 검토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입장을 냈다.

이후 주민대표들은 안양시와 경기도가 대기배출시설 허가 신청을 자진 취하하도록 압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안양시는 지난해 3월 41명 공무원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리고, 19차례 방문해 조사 및 단속을 실시했다.

결국 주민대표와 협의를 조건부로 한 대기배출시설 가동개시 신고가 수리됐지만, 제일산업개발은 지자체의 행정지도가 과도하다며 안양시 등을 상대로 재산상 손해 1억5000만원, 정신적 손해 5000만원 등 총 2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위법한 조사 및 단속행위로 인해 회사 직원들이 고유 업무를 하지 못했고, 회사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인적·물적 자원을 소모했다”는 제일산업개발의 주장이 일리 있다고 봤다. 지자체의 조사 및 단속행위가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반해 지나쳤다는 결론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장에 대한 주민들의 민원 제기는 안양시가 공장 지역 인근에 대규모 주거시설 건축을 승인해 발생한 것”이라며 “안양시는 제일산업개발의 영업권과 주민들의 환경권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이해관계를 조정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조사 및 단속행위가 이뤄진 경위, 내용 및 공장의 배출물질에 대한 조사결과 등을 고려하면 안양시가 실시한 조사 및 단속행위는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고, 필요성도 인정되지 않는다”며 “수단의 적절성, 비례의 원칙도 준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회사의 명예와 신용이 훼손됨으로써 사회적 평가가 낮아지고 그 사업수행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이는 점이 인정된다”며 “명예 및 신용이 침해된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배상액수 산정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부시장과 환경보전과장의 배상책임은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들이 환경전문가가 아니므로 환경역학조사 등이 실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장에서 검출된 벤조피렌, 다환방향족탄화수소류의 양이 주민들의 건강에 실질적인 위해를 가할 정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에 따르면 문제 공장에서 지난 2017년 3월 기준 벤조피렌 0.0000158mg/S㎥, 다환방향족탄화수소류 0.0051mg/S㎥ 등이 검출됐다. 당시만 해도 배출허용기준이 존재하지 않았다.

환경부는 지난해 8월에서야 이와 관련 다환방향족탄화수소류(벤조a피렌) 배출기준 0.05mg/S㎥을 제시했다. 공장에서 검출된 수치는 이 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인 점도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근거로 반영됐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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