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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신문 “日총리관저 주도로 한국 수출규제강화 극비리에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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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신문 “日총리관저 주도로 한국 수출규제강화 극비리에 결정”

도쿄=박형준 특파원 입력 2019-10-18 15:49수정 2019-10-1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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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신문이 18일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강화 조치는 총리관저 주도로 극비리에 결정됐다고 보도했다. 발표 시점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참의원 선거 공시(7월4일) 사이로 하다보니 7월1일로 결정됐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 내에서도 신중론이 많았던 조치를 왜 단행했는지 아사히가 검증한 전말을 재정리했다.

6월20일 도쿄 총리관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후루야 가즈유키(古谷一之) 관방 부장관보,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외무성 사무차관,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당시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시마다 다카시(嶋田隆) 당시 경제산업성 사무차관과 함께 회의를 열었다. 일본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일본의 태도를 한국에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협의했다. 그 회의에서 수출규제를 강화하기로 결정됐다.

하지만 철저히 비밀로 했다. 8일 후 오사카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리기 때문이다. G20 정상회의에서 아베 총리가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할 예정인데,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강화 조치를 사전에 발표하면 자유무역과 모순이 생긴다는 점을 우려했다.


7월4일 참의원 선거가 공시될 것이라는 점도 감안했다. 한국에 대한 국민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여론을 의식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경제산업성은 7월1일에 조치를 발표했다. 정권 간부는 수출규제강화 조치에 대해 “경고의 의미”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영향은 경고에 그치지 않고 한일관계를 진흙탕에 빠뜨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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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후 고노 다로(河野太郞) 당시 외상은 강경화 외교장관과 수차례 회담하며 일본 기업에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요청했다. 하지만 강 장관도 청와대 의향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일본 정부는 청와대와 교섭을 시도했지만 파이프가 약해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한일 관계 소식통). 이대로 가다간 일본 기업의 자산이 매각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1월30일 자민당과 외무성의 합동회의가 열렸다. 주한 일본대사의 소환 등 강한 조치가 거론됐고, 한 의원이 “백색국가(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한국 제외를 검토하라”라고 지시했다. 자민당으로부터 요구도 있어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대항조치를 검토했다. 다만 주무 부처인 경제산업성에는 “주먹을 휘두르면 어떻게 거둬들이나. 거둬들인 후 영향도 크다”는 신중론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정권 간부들은 “그런 조치를 해도 한국은 아파하지도, 가려워하지도 않는다”며 신중론을 일축했다. 그리고 더 강한 조치를 하도록 주장했다. “싸움은 첫 한 방을 어떻게 때리는지가 중요하다. 국내 여론도 따라온다”고도 말했다.

총리관저 측은 한국에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정권에 플러스로 작용할 것이라고 계산했다. 아베 총리 주변에선 “일한(한일) 문제가 지지율을 밀어 올렸다. 일한 쌍방의 여론이 ‘더 때리라’며 과열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사이 한국 측이 아무 수를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8월 중순 청와대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을 파견해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당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과 회담했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그 무렵 한국 정부는 이른바 ‘1+1+알파(α)’ 방안을 수면 아래에서 제시했다. 한국과 일본 기업에 더해 한국 정부도 자금을 내겠다는 안이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다. 일본 기업이 배상금을 지급하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쪄도, 구워서도 먹지 못하는 안이다”고 말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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