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 대신 병원’ 아내 살해 60대…‘치료적 사법’ 효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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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0월 15일 07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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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씨(67)는 지난해 12월 어린 손자들이 보는 가운데 아내 A씨(당시 65세)를 수차례 때리고 흉기로 찔렀다. 아내는 결국 숨졌다.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씨에게 1심은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심신상실 주장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수감보다는 치료가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했다.

1심 판결에 양측 모두 항소했다. 특히 살해당한 A씨의 유족이자 이씨의 아들은 “아버지 질병의 치료가 선행된 상태에서 죄에 대한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 항소했다”고 밝혔다.

14일 이씨의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경기 고양시의 한 병원에서 이씨 사건에 대한 첫 보석조건 준수 점검회의를 진행했다. 3명의 재판부와 변호인, 병원장, 이씨의 아들이 회의에 참석했다.

중증치매를 앓는 이씨도 함께했다. 붉은빛을 띤 얼굴에 백발의 이씨는 ‘잘 지냈냐’ ‘아들이 자주 찾아오냐’ 등을 묻는 재판부의 말에 “네”라고 짧게 말했지만, ‘아버지 여기 어디야’라는 아들의 물음에는 “내 직장 생활”이라고 답했다.

앞서 재판부는 치매전문병원 입원을 조건으로 이씨에 대한 직권보석을 허가했다. 법원이 치매환자에게 ‘치료적 사법’을 목적으로 보석을 허가한 것은 이 사건이 처음이었다.

이는 이씨의 치매상태가 심각해 수감생활을 계속할 경우 상태가 더 악화할 위험성이 있어 치료를 선행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활용할 수 있는 보석결정이다.

당시 재판부는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이상 치매 논의는 피할 수 없다”며 “특히 이씨와 같은 중증치매환자는 가족들이 돌보는 데 한계가 있어 재판부도 국가도 그 책임을 함께 나눠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보석조건으로 ‘주거제한’과 ‘외출금지’를 내걸었다. 이씨 자녀에게는 보석조건 준수에 관한 보고서를, 병원에는 1주일에 한번 이씨의 치료 조사결과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여기에 재판부는 이씨의 치료 상황, 치료 효과, 보석조건 준수여부를 직접 확인하고 논의하기 위해 이날 병원을 찾았다.

휠체어를 탄 이씨가 병실로 돌아간 뒤에는 본격적인 회의가 이뤄졌다. 아들과 병원장은 이씨가 지난달 입원한 뒤로 일정부분 호전됐다고 설명했다.

병원장 B씨는 이씨의 상태에 대해 “기억력과 인지기능이 저하되는 점에서는 좋아진 것이 없다”면서도 “입원 초반인 지난달 충동성이나 공격성을 보인 모습이 약물치료로 조절되면서 더이상 그런 모습이 안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씨를 보기 전에는 사건이 치매 때문인지 의도한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부담도 됐지만, 평소 보던 환자들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며 “보호자의 치료의지가 굉장히 중요한데 이를 통해 치료를 잘 받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안정된 상태임을 인정하면서도 “이씨는 자녀 집으로나 사회로 돌아갈 순 없고 보석은 치매전문병원에서만 지내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며 준수사항이 지켜지지 않으면 이씨가 구치소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시설의 통상적인 입원기간이 1년 이내로 짧은 점과 이씨가 합병증을 앓는 점을 고려해 다른 치매전문병원으로 옮길 가능성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재판부는 앞으로 2개월가량 이씨의 경과를 더 살핀 뒤 공판준비기일을 열 계획이다. 이후 재판을 한 번 더 진행해 변론을 종결하고 선고할 예정인데 이씨의 상태 등을 고려해 입원한 병원에서 판결이 내려질 예정이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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