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의 ‘쥐꼬리 시대’ 넘어 ‘소꼬리 시대’ 일궈냈지만…늘 불안한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3일 16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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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로 인한 불안은 비통한 마음을 낳기 쉽다. 이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은 이 상황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려는 노력이다.”-알랭 드 보통, ‘불안’

그는 쥐꼬리만큼 버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소꼬리’ 정도는 버는 사람이 되었지만 늘 불안하다. 그는 절대 가난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가난했던 유년 시절, 부잣집 아이와 비교당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고 자신의 미래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에 좌절했다. 당시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란 상위 1%의 성적으로 일류대에 들어가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국가가 인정하는 고급 공무원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감내해야 할 것은 수 없이 많았다. 잠을 줄이는 건 물론 공부에 방해가 될까 친구도 가려서 사귀었고 남들 다하는 연애도 미룬 채 앞만 보고 달렸다. 피나는 노력 끝에 결국 그는 아버지의 쥐꼬리 시대를 넘어 소꼬리 시대를 일궈냈다.

하지만 그는 늘 불안하다. 갑자기 암에라도 걸려 이 지위를 잃게 되면 어쩌나 싶어 몇 달에 한번은 건강검진을 받는다. 가족 중 누구라도 사고를 당할까봐 늘 안부를 물으며 노심초사한다. 또한 지금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 좌천이라도 당할까 봐 자존심까지 다쳐가며 상사에게 마음을 쓴다. 동료는 물론 후배에게까지 인심을 잃지 않으려고 마음에도 없는 친절을 베푼다. 이렇게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그는 한날한시도 불안에서 놓여난 적이 없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의 원인을 자신의 안정을 위해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도피하는 데 있다고 했다. 삶의 기준을 세상에 맞추다 보면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무한 경쟁체제와 능력주의에 맞춰진 세상의 기준은 늘 더 높은 곳을 향해 있기 마련이다. 나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은 채, 무작정 세상의 기준에 맞추다 보면 결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세상이 정한 기준이 아니라, 내가 처한 현실을 담담히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불안이라는 악령에서 벗어날 수 있다. 쥐꼬리니 소꼬리니 하는 말은 세상이 정한 기준일 따름인 것이다. 소꼬리와 쥐꼬리가 사람을 차별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사람에게 있어 유일한 차별점은 불안한 사람과 불안하지 않은 사람, 그것뿐이다.

홍창진 신부(천주교수원교구 기산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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