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총리, 오래전부터 노벨평화상 유력후보로 꼽힌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1일 22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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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15일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아비 아머드 알리 에티오피아 총리(오른쪽)가 
이사이스 아프베르키 에리트레아 대통령과 손을 붙잡고 높이 치켜들어보이고 있다. 1998년부터 20년 간 전쟁을 벌여온 두 나라는 
당시 종전을 선언했고 두 달 후 평화 협정도 체결했다. 아비 총리는 이를 통해 동아프리카에 평화를 정착시킨 공로로 11일 
2019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뽑혔다. 아디스아바바=AP 뉴시스
지난해 7월 15일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아비 아머드 알리 에티오피아 총리(오른쪽)가 이사이스 아프베르키 에리트레아 대통령과 손을 붙잡고 높이 치켜들어보이고 있다. 1998년부터 20년 간 전쟁을 벌여온 두 나라는 당시 종전을 선언했고 두 달 후 평화 협정도 체결했다. 아비 총리는 이를 통해 동아프리카에 평화를 정착시킨 공로로 11일 2019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뽑혔다. 아디스아바바=AP 뉴시스
아비 아머드 알리 에티오피아 총리(43)가 11일(현지 시간) 2019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뽑혔다. 지난해 이라크 인권운동가 나디아 무라드와 공동으로 평화상을 받은 콩고 의사 드니 무퀘게에 이은 2년 연속 아프리카 출신 수상자다. 그의 수상으로 전체 100명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단체 중 아프리카 출신은 최초 수상자인 앨버트 루툴리 아프리카 민족회의 회장(1960년),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2001년), 케냐 환경운동가 왕가리 마타이(2004년) 등을 포함해 13번째가 됐다.

지난해 4월 취임한 그는 이웃 에리트레아와의 20년 전쟁을 종식시켰을 뿐 아니라 아프리카 최초의 남녀 동수 내각을 출범시키고 종교·종족 분쟁이 심각한 에티오피아의 사회 통합에도 기여했으며, 100만 명의 난민에게도 포용적인 정책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 CNN 등 서구 언론이 오래전부터 그를 유력한 평화상 후보로 꼽은 이유다. 베리트 라이스안데르센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아비 총리가 화해, 연대, 사회 정의를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노벨위원회는 트위터를 통해 “2019년 노벨평화상은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도 밝혔다.

이날 노벨위원회와 통화에서 아비 총리는 “매우 행복하고 감격스럽다”며 “이 상은 아프리카와 에티오피아 전체에 주는 상”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유엔과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 등 국제 기구와 아프리카 국가 정상들도 축하 성명을 연달아 발표했다.

에티오피아는 1952년 에리트레아를 병합했다. 42년의 전쟁 끝에 1993년 에리트레아가 독립했지만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1998년부터 20년간 전쟁이 시작됐다. 에티오피아는 또 다른 이웃 나라 소말리아와도 사이가 좋지 않다. 소말리아는 소말리족이 주로 살고 있는 오가덴 지역에 대한 영토 회복을 주장하며 1977년 에티오피아를 침공했다. 두 나라에는 지금도 에티오피아 반정부 단체가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아비 총리는 총리 취임 3개월 만인 지난해 7월 에리트레아와 종전을 선언했다. 9월에는 평화협정을 체결해 20년 전쟁을 끝냈다. 동시에 소말리아의 침공 후 41년간 중단됐던 에티오피아항공의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 운항도 재개됐다. 그는 같은 해 10월 아프리카 최초로 20명의 정부부처 장관 중 10명을 여자로 채우는 남녀 동수 내각을 출범시켰다. 단순한 구색 맞추기가 아니라 국방, 평화(경찰 및 정보기관 총괄부서) 등 주요 부서에 모두 여성 장관을 임명했고 대통령과 대법원장도 여성이다.

나이지리아에 이어 아프리카 2위 인구 대국인 에티오피아(약 1억200만 명)는 내부 갈등도 심각했다. 그는 1976년 무슬림인 오로모족 아버지와 정교회 신자였다 무슬림으로 개종한 암하라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군인과 유엔 평화유지군, 사업가를 거쳐 정계에 입문했고 지난해 42세 젊은 나이로 최고 권좌에 올랐다. 오로모, 암하라, 티그레이 등 3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해 종족과 종교를 뛰어넘어 국민 통합을 이뤄낼 것이란 기대를 받아왔다.

아비 총리는 올해 1월 자국 내 난민 수용소에 머무는 100만 명의 난민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경제 및 금융 활동도 허용했다. 사회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서구 선진국이 강력한 반(反)난민 정책을 펴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국가 정상을 포함한 세계 각국 정치인들 중에서도 비교적 젊은 편인 아비 총리는 국내에서도 긍정적이고 활기찬 이미지가 강하다. 평소 짬이 날 때마다 체육관에 드나드는 ‘운동광’으로도 소문이 나 있다. 지난해 10월엔 에티오피아군 일부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무기를 들고 의회로 찾아갔는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아비 총리는 그들을 잘 타일렀을 뿐만 아니라 함께 ‘푸쉬업’을 하며 사기를 북돋아줬다. 서방 언론들은 그의 인기를 과거 미국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열풍 ‘오바마니아’에 빗대 ‘아비마니아(Abyimania)’라 칭하기도 한다.

지난해 8월 정상회담 차 한국을 방문할 당시엔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간 관계가 남북 관계와 비슷하다”며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가 화해한 것처럼 남북 관계도 개선되기를 희망한다”는 소회를 밝혔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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