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진심을 담아 중탕처럼 서서히…해피 엔딩은 기다림이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0일 15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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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다투고 또 화해하는 과정, 섬세한 손길 필요한 요리와 닮아
생채기 난 마음은 회복시간 더뎌… ‘사과했잖아’라고 재촉하지 말아야
해피 엔딩에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음식의 속성을 잘 모르는 나는 해동(解凍)을 잘못해 곤욕을 겪은 일이 종종 있다. 실온에서 천천히 자연 해동을 시켜야 하는 음식이 있고, 중탕으로 살살 녹여야 하는 재료가 있는데, 급한 마음에 달궈진 프라이팬에 던져 넣거나 다짜고짜 전자렌지에 데워서 망쳐버리는 실수. 사람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식기 전에 냉장고에 넣으면 안 되는 음식은,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방치한 미련을 닮았고, 오븐에서 급히 부풀다 터져버린 빵은 ‘섣부른 설렘’을 닮았다. 잘못을 한 상대에게 건네는 진심의 사과는, 가스불 앞을 떠나지 않고 지켜봐야 하는 중탕의 과정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요리에 서투른 사람들이 가장 당황하는 부분은 형편없는 맛이나 과정보다는 뒤처리에 있다. 집안 일 좀 하는 사람들은 요리의 끝은 설거지, 나아가 그릇 정리라는 걸 안다. 조리는 중간 과정에 불과한 것으로, 아이들을 위한 직업체험 공간에서 특정 직업의 가장 재밌는 부분만 해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마찬가지로, 사과는 건네는 용기 그 자체보다는 그 이후의 처리가 훨씬 중요하다. 말다툼을 하고, 사과를 한 후에 자주 벌어지는 여진 같은 다툼들이 있다. “아, 미안하다고 했잖아!”는 말로 시작되는 ‘2차 대전’을 우리는 얼마나 무수히 겪어 보았는지.

다툼의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기합리화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격해진 감정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서운함과 짜증은 성난 황소처럼 앞만 보고 달린다. 내가 맞다, 너는 반드시 틀렸다는 확신에 가속을 붙을 때쯤이면 싸움의 원인이나 배경 따윈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 살풀이 같은 자기합리화에서 빠져나와 객관적으로 내가 ‘잘못 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은 제 3자가 보는 것만큼 쉽지 않다. 흐트러진 이성을 붙잡고 나의 실수를 대면하는, 그 겸연쩍은 시간을 지나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 그렇기 때문에 “미안하다”는 말은 그토록 무겁다.

공인이 큰 잘못을 했을 때 제대로 된 사과 하나로 여론이 바뀌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아마도 사과하기까지 내면의 갈등 과정을 모두 경험해봤기 때문 일 테다. 사과는 어려운 자기인정이고, 그래서 그 자체만으로 많은 것이 용서되기도 한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백기를 흔들었다고 해서 그 모든 난장판이 아무 일이 없던 게 되는 건 아닌 것처럼, 사과를 하는 용기만으로 상대에게까지 마침표를 강요할 순 없다.

이제 사과를 받는 입장일 때를 회상해보자. 똑같이 소용돌이 속에 빠져있다. 상대는 잘못을 했다. 다행히도 상대가 어느 순간 뉘우치고 사과를 건넨다. 일순간 마음이 확 누그러진다. 사과를 받는 순간을 계절에 비유한다면 늦겨울이다. 아직은 춥지만, 봄이 온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기 시작하는 즈음. 겨울의 끝자락이라고 해서 당장 외투를 벗지 못 하는 것처럼, 분노의 끝자락이라고 해서 바로 미소 짓기는 힘들다. 조금은 머쓱해지는 시간이다. 마음이 녹는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 언어의 온도는 여전히 차갑게 틱틱 거린다. 헤쳐 풀어져 있는 상처들은 여전히 나동그라져있다. 그 즈음 ‘미안하다고 했잖아’라고 말해버리는 상대. 사과는 유세가 되고, 상처받은 사람은 ‘쪼잔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잘못된 금전관계의 끝과 닮지 않았는가. 빌려준 사람은 죄인이 되고 갚아야 할 사람은 역정을 내는.

사과의 진정한 끝은 상대의 마음이 정상온도를 찾을 때 까지 기다려주는 것이다. 머쓱한 상대가 못 이기는 척 돌아오는 길에 살갑게 손을 잡아주는 것이고, 내 입으로 낸 상대의 상처의 깊이를 헤아리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문득 다시 차오르는 상대의 서운함에 한 번 더 고개를 숙여주는 것이다. 그 상대가 당신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반대로 사과를 받는 사람 또한 상대의 그런 마음까지 느낄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엔딩이겠지.

지는 노을이 그토록 노래 가사에 많이 등장하는 건 사람의 감정을 닮아서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저녁시간은 분명히 왔고 곧 해가 질 것이라는 걸 모두가 알아도, 하루는 스위치처럼 꺼지지 않고 여운 같은 노을이 지나서 떠나지 않던가. 사랑하는 사이에서 다툼은 피할 수가 없다. 아니, 사랑하기 때문에 어쩌면 필연적이다. 다툼 이후에 오는 숨 막히게 불편한 시간을 잘 다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사랑을 지켜나가는 진정한 비결이 아닐까.

김이나 객원논설위원·작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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